2부 우리가 싸우듯이
1~41
2부 우리가 싸우듯이
1~41
1.
기록할 수 있을까? 매 순간을? 나의 신경 회로를 클라우드와 동기화하고 싶지만, 설사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누가 그 결과물을 구술할 것인지, 내가 쓰고 말하는 언어로.
2.
비평가로서 소진되는 일은 가차 없다. 신생공간 이후, 삽시간에 불어난 청탁을 마다하지 않은 채 일상을 치렀으나 나의 직관에 의지해 읊어댄 글들은, 바로 그 직관으로 말미암아 무뎌졌다. 사실상 모든 글이 「운석들」의 단조로운 변주처럼 느껴졌다. 혹은 그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외면한 채, 현실에 불시착한 데이터 무더기를, 어떻게든 지속 가능한 작업인 것처럼 쓸어 담았다. 무슨 매체로 귀결되든 간에 픽셀이 튀는 낌새를 수소문하는 것이다. 운석처럼 일그러진 형상. 나에겐 그런 식으로 작업을 마주하는 것 외에 별다른 수도, 대안도 없었다.
내가 무릅쓴 비평가의 역할roll을 전부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운석’은 2010년대에 종속되지 않은, 인터넷과 재/매개된 새로운 관계 형식을 요구했고, 나는 아직도 그게 뭔지 이론적으로 깨우치지 못했을 뿐이다. 그렇다. 내가 숙지할 필요가 있는 이론은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그것’이 헤아리지 못한 온갖 하위문화의 형식으로 자가 증식하는 중이다. 양자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비평가 선생님은, 실제 나이와 무관하게 자신이 반복하는 “포스트 인터넷” 후렴구에 따라 기성화될 수밖에 없다. 글을 쓰는 일은, 그 결과물이 (미술) 비평이라고 확신할수록 지루해졌다. 이런 게 비평이라면, 업계 차원에서 무슨 쓸모가 있을까? 문제는 나에게 청탁했던 클라이언트의 경우, 나와 마찬가지로 비평의 쓸모를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애초에 현장에서 활동하는, 나이로 맞먹는 동시에 ‘선생님’으로 대접할 만한 전업 비평가가 드물거나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로? 그 당시엔 그렇게 확신했던 바이다.
결과적으로 허울만이 남았다. 비평가로서는 물론이고, 내가 규정했던 사용자라는 주체의 모델마저, 더 이상 구구절절 해명되기를 바라는 대신, 그냥 나의 글에서 의심스러운 단어, 아니 허울로 펄럭거렸다. 사용자란 무엇인가? 사용자로 말할 것 같으면, 액정 안팎을 넘나들다가 현실을 향해 자빠진 남루한 존재다. 사용자의 관점에서 현실은 뭔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데이터의 전류를 실감하면서 현실, 아니 서울이 해상도 차원에서 구현된 홀로그램 같은 게 아닌지 실존적으로 자문하는 것이다. 그렇다. 나는 홀로그램 속에 남겨졌다.
내가 마주했던 작업뿐만 아니라, 그 작업을 만든 당사자들, 작가나 큐레이터, 간혹 비평가도 있었지만, 하여튼 그 모든 존재들이 가소로워 보였다. 모두가 액정 바깥에서, 나와 무관하게 뭐라고 지들끼리 떠들어대고 있다. 실체가 없다. 나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불투명한 장막은 각자가 체감하는 시차의 차이, 이를테면 내가 머무르던 (지금이 아닌) 2010년대에서 비롯한 문제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보다는 나의 직관과 함께 무뎌진 현실감의 징후에 가깝다.
3.
사용자는 너무 보편적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유닛’이라는 단어를 제멋대로 사용했다. 유닛으로 말할 것 같으면, 사실 그걸 처음 떠올리게 된 이유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사용자 아닌) 플레이어가 운용하는 보급형 캐릭터에 대한 고유 명사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우스 커서로 범주화된 채, 때로는 혼자서 적진을 공략하기 위해 가상의 맵을 가로지른다. 죽음을 무릅쓴 채로. ‘그것’이 죽는 건 별로 안타까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스스로를 주체로 호명하기도 전에, 전략 차원에서 소모되기 위한 병력의 일원으로서 죽음을 반복할 뿐이다. 여러 번에 걸쳐 뒈지고 있는 나의 존재와 동일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단어, 아니 개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내가 되풀이했던 여러 개념과 마찬가지로, 유닛 또한 개념화의 과정은 생략됐다. 그 이전에 나는 플레이어의 전지적 시점에 순응하되, 유닛이 그 자체로서 누릴 수 있는 세계가 무엇인지 가늠하고 싶었다. 유닛을 설명하기 위한 몇 가지 작업들이 단상처럼 치밀었다.
「운석들」과 마찬가지로, 지금에 이르러 개별 작업이 (독자적으로) 유닛과 어떻게 연동되는지 짚어낼 필요는 없다. 나와 그 작업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무엇보다 나는 이미 미디어버스에서 출간하는 ‘한시간총서’의 일환으로 『유닛의 세계』라는 책자를 썼다. 심지어 h와 함께 출간 기념회도 진행했는데, 거기에 참석한 관객의 숫자는 책에서 예시로 든 몇 안 되는 작업들보다 한참 적었다. 그들과 바투 앉아, 바로 여기에서 눈을 마주치는 게 어색했다. 그냥 같이 맥주나 마시러 가고 싶었다. 실제로 커플처럼 보이는 두 사람은 토크 도중에 그러기 위해서 자리를 뜬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총이 있었다면, 그 순간 내 머리에 방아쇠를 당겼을 것이다. 저도 데려가 달라는 무언의 퍼포먼스로서. h에게 이번에는 정말 뒈지고 싶다고 말했다. h는 그런 나를 절망적으로 쳐다봤다. 사례비나 좀 주고 그런 소리를 하는 게 어떤지, 추궁하는 것처럼. 실제로 그날 토크는 여러모로 망했다. 무슨 말을 주절거렸는지, 단 한 마디도 기억나지 않는다. 토크 이전에 인데놀 몇 움큼을 삼켜버린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이후에도 유닛이 나의 글 속에서 반복됐다는 사실이다. 이번에도 철 지난 후렴구인가? “포스트 인터넷”을 연장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인가?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보다 중요한 것은 비평가 이전의 내가 ‘유닛의 세계’를 경험하고 있거나, 최소한 그곳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용자는 플레이어의 상위 호환이다. 반드시 무슨 게임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 차원에서 게임을 포함한 온갖 미디어를 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는 사용자의 하위 호환으로서 게임 속 유닛을 운용하지만, 하위를 거슬러 사용자에 다다를 수 있다면, 굳이 그런 비약을 감수하자면, 유닛은 사용자가 겪는 인지 부조화, 현실감의 결여, 그 외에 나를 현실과 차단하는 병적인 강박을, 다름 아닌 사용자인 ‘나’에게 호소하는 무언가였다. 액정 안팎에서 우리는 매개된다. 이 좆 같은 세상을 누리기 위해.
4.
나는 유닛이다. 사용자는 누구인가? 나를 신적인 의지로 다스리다 못해 서울 벽지에 처박아 둔, 그런 뒤에 또 다른 유닛을 물색하고 있는 초자아인가? 뭐라 단정할 수 없지만, 나는 사용자로서 유닛인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지도 인터페이스를 떠도는 무수한 점들 중의 하나, 물론 다른 점을 일일이 헤아릴 수 없지만, 하여튼 내가 ‘그것’과 드래그된 처지라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울로 모여든 채, 무수한 첩탑 아래를 구차하게 떠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기는커녕, 주변의 기척조차 성가시다. 그렇다. 점들은 마주치지 않는다. 아니, 옷깃만 스쳤을 뿐인데, 인연을 저주한다. 여기서 누구와 함께 복작거리는 일은 (나에겐 공황 발작의 전조처럼 느껴지는) 멀미를 유발할 뿐. 이제 어디를 공략할 것인가? 우리의 전생을 돌이킬 겨를도 없이 다다를 적진은 어디인가? 문제는 사용자도 자기 주변이 아닌, 도심으로 얽혀든 지리에 훤하지 않다는 사실, 여기를 수소문하기 위해선 유닛의 경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유닛이 떠오른 액정 위에 처박은 얼굴이 가소로워 보인다.
“아니, 그냥 치트키를 쓰라니까?”
5.
고개를 들자, 정지 화면처럼 굳어버린 교실의 풍경이 어른거린다. 여기에 도사리고 있던 학생 여러분을 드래그한 다음, 기억 속에서 전부 쓸어버렸다. 나는 ‘그들’과 시선으로 매개돼 있을 뿐, 그 사이로 치민 각자의 욕망, 가난한 동네에서 자기 몸을 사고 팔면서, 서로에게 치른 절망적인 대가가 무엇인지 모른다. 아니, 그 대가를 무상에 가깝게 누렸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리지 않고, 여기로 되돌아온다. 그렇다. 유닛이 아닌 나의 존재는 여기에서 시작됐다.
6.
불과 얼마 전에 랄프와 함께 우리 가족이 7년 동안 살았던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 오래된 동네 주변을 돌아다녔다. 기억의 실마리를 좇기 위해서는 아니고, 무슨 미술관이 나를 작가로 섭외했기 때문이다. 무슨 작업을 만들지? 고민하기 이전에 제목부터 정했다. 작업의 제목이 다름 아닌 <우리의 공동체>라는 사실이 지금도 의심스럽다. 나는 공동체를 믿지 않는다. 왜냐하면 공동으로 미술을 꾸며낸 적이 없으므로. 나 혼자서 담배 연기가 자욱한 방안에 틀어박힌 채 뭔가를 계속 쓰다가, 비평가로서 자연스럽게 소진됐으므로. 이 또한 인데놀을 비롯한 온갖 약물을 과다 복용한 부작용인가? 사실 출간 기념회 이전부터 정말이지 죽고 싶었다. 무수한 실패들. 그것들은 전부 약 기운에 심취한 나머지, 내가 주변 사람들과 맺었던 관계를 스스로 망쳐버린 결과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내가 액정 너머로 웅크리고 있던 이유는 나의 “자유의지”에서 비롯한 게 아니다. 나와 함께 드래그된 점들을 인간으로 대접하기 위한, 휴머니즘적인 가치를 저버렸다는 사실을, 그리 넓지도 고르지도 않은 주변이 눈치챘기 때문이다. 주변은 나에게서 멀어진다. 나는 그냥 점들에게 둘러싸인 채, 무슨 첨탑으로 우뚝 서기를 바랐다.
다행히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고, 그 사실로 말미암아 첨탑이 아닌 약물 자해의 주범이자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낮에는 미술계에 대한 소신에 찬 발언을 일삼는 (윤리적인) 키보드 워리어로 활동했고, 밤에는 취중에 전 애인을 포함해 이미 박살난 관계의 비/당사자에게 전화를 걸어 절망을 호소했다. 나는 이대로 뒈질 거야. 나의 장례를 치르느라 모두 수고가 많겠지. 수화기 너머에서 그런 나를 위로했던 사람들이 지금에 이르러, 각자의 기억을 복기하면서 나에게 고소를 먹인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우리의 공동체? 우리의 관점에서, 정말이지 좆 같은 제목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엑스 걸프랜드가 잠든 사이에 게이 포르노를 보다가 들킨 죄로 뒈질 거야. 피임을 불사하지 않고 섹스하다 아침이 되면 존나 냉정한 척 우리 사이를 매듭지은 죄로 뒈질 거야. 랄프가 말하기를, 너는 여러모로 운이 좋다. 나였으면 네가 뒈지기를 바라기도 전에 너의 아가리를 정관처럼 묶어버렸을 텐데. 그 사실을 무릅쓴 채, 랄프가 나와 함께 ‘그곳’으로의 여정에 동참한 이유는, 랄프의 직업이 사운드 테크니션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동체>는 일종의 오디오 다큐멘터리고, 나 혼자서 그걸 만드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휴대용 녹음기를 켠 채, 오래된 동네의 면면을 짚으면서 랄프에게 뭐라고 떠들었다. 여기에서 미친 새끼들과 담배를 나눠 피웠지. 여기는 뭔가 그대로네. 여기쯤에서 누구랑 약속도 없이 만나서 같이 등교했어. 아파트로 이사가지 않았다면, 뭔가 좀 달라졌을지도. 모든 걸 털어놓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아니, ‘그곳’에서 무슨 중학교 정문까지의 거리가 한참 모자랐다.
7.
정신과 의사한테 상담을 구하지 않은, 뭔가 치명적이고 기이한 사실 중의 하나는 여전히 꿈속에서 중학생 때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교복 차림으로 등장한다는 것, 이제는 죽어버린 너를 포함해서. 나는 꿈이 아닌 곳, 아니 어디서도 교복을 입은 너의 모습과 마주친 적 없는데.
기억 속에서 쓸어버린, 아니 그러기를 바랐던 사람들. 내가 처음으로 시선을 독차지했던 그 순간을 저버릴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식으로 단정하기엔 나의 무/의식은 그들을 너무 빈번하게 불러 모은다. 그 꿈은 악몽이 아니다. 우리는 무슨 소굴에 숨어들지도, 거기서 담배 피우거나 무작정 소주병을 늘어놓지도 않은 채, 그냥 학교 여기저기를 배회하다 우연찮게 마주치고, 뭔가 사사로운 대화를 나누다 각자의 자리로 흩어진다. 그들의 얼굴은 멍청하다기보다 너무 앳되다.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서로를 ‘걸레’나 호모 새끼라고 부르면서 그토록 잔인하게 굴던 우리가, 우리의 얼굴이 나처럼 늙어버리지 않았다는 게. 그중에서 유일하게 나처럼 늙어버린 사람은, 무슨 카페 흡연실에서 마주 앉아 반나절에 가까운 시간을 지샌 너 하나뿐이다. 반나절은 무한하게 지속된다. 그 시간을 펜스처럼 둘러싼 유리 창문, 둘이서 함께 거닌 적 없는 쇼윈도 너머로 펼쳐진 더럽고 비좁은 골목길에는 종종 교복 차림의 누군가들이 어슬렁댄다. 우리를 쏘아볼 때도 있지만, 그 시선은 유리의 표면에 가로막힌다.
아무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 너는 ‘걸레’가 아니고, 나는 호모 새끼가 아니다. 너는 죽은 적이 없고, 나는 여기로 되돌아온다. 모든 대화를 돌이켜 보기엔, 너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아니, 나는 줄곧 너의 얘기를 듣고 있었지. 맨솔을 피우면서. 네가 꼬시려는 남자들이, 최소한 여기에선 너를 공포에 질리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 또한 마찬가지일까? 우리가 서로를 꼬시려고 수작 부린 적은 없지만, 혹은 그 사실로 말미암아 내가 너를 더 이상 함부로 대할 수도 해칠 수도 없다는 걸 예감하고 있었을까? 무슨 근거로? 그런 식으로 되묻지 않았기 때문에 반나절을, 오직 그 시간만을 함께 누릴 수 있었다. 갑자기 흐느끼지도, 서로의 머리채를 잡지도 않으면서. 내가 너를 알아봤던 그 순간을 에둘러 가면서. 연락이 드물어진 이후에서야 오래전의 무슨 소굴을, 우리 집과 유사한 질감으로 허물어지던 ‘그곳’을 기억 속 어딘가에 쑤셔 넣은 채로 방치했다. 피드에서 종종 맞닥뜨린 너의 안부가 나와 다르게 무사해 보였다.
개인으로서 체감하는 우울과 불안은 당연하게도 개인을 내적으로 좀먹는다. 내가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더라도, 그 장면을 통해서 나를 좀먹고 있는 ‘무언가’의 정체를 나와 유/무관한 사람들과 함께 교차 검증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장면은 오히려 가소로울 것이다. 나의 (절망적인) 메소드를 구현하기 위한 서툰 몸부림처럼 보일 뿐,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 실제로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는 점에서. 랄프와 별개로, 어느 순간부터 나는 내 아가리를 다물게 됐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다면 함부로 연락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전부 쓸려나갔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를 고소하는 대신에 그냥 차단을 박았다. 마지막으로 자살 시도한 직후, h와 함께 살았던 집에 모여든 미술계 사람들, 아니 그들이 뒤엉킨 환영 중에 내가 알고 지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네가 내어준 무릎 위에 누운 채, 그들과 함께 보낸 연말은 근사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너를 알아차렸다는 사실과 별개로. 물론 그 사람마저 환영에 불과했지만.
8.
청탁은 더 이상 불어나지 않았다. 굳이 ‘선생님’이나 전업이 아니더라도 미술을 비평할 수 있는 사람은 나의 짐작보다, 그리 많지는 않더라도 드문드문 존재했다. 20xx년에 무슨 평론상에 지원했으나, 턱걸이에 간신히 매달렸을 뿐이다. 최종 면접을 기다리다 누군가를 우연찮게 마주쳤는데, 왠지 그 사람이 (자기 주변을 에두르는 듯한, 뭔가 아우라적 간지를 풍기면서) 탈 것 같았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실제로 그렇게 됐다. 기고한 글이 아까워서 어딘가에 업로드할 창구가 필요했는데, 개인 클라우드보단 블로그가 좀 더 적당해 보였다. 그 이유로 말할 것 같으면, 역시나 글을 읽어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방문자 수는 며칠 동안 가파르게 올랐지만, 그 며칠이 지나자 다시 가파르게 내려갔다. 누구에게도 피드백을 구하지 않았다. 나의 낙선작은 사실 『유닛의 세계』의 리믹스 버전에 가까웠다. 필연적으로 낙선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유닛’으로 무슨 작업들을 묶을 것인가? 세상은 좀 달라지고 있었다. 미투 운동으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운동을 주도했던 여론의 일부는 여성의 권익을 위해, 또 다른 일부는 여성으로서 여성 아닌 사람들을 혐오하기 위해 헤쳐 모였다. 후자를 TERF, 이른바 트랜스 배제적 페미니스트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나는 갈수록 TERF를 견딜 수 없었다. 그 무렵부터 나의 퀴어 정체성을 헤아리기 위해서, 아니 사람들 앞에 내세우려는 목적으로 말미암아 커밍아웃을 했다. 그렇다. 나는 바이섹슈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님들을 키보드로 조지겠다. 사실 세상이 (극적으로) 달라진 게 아니라, 그 이전부터 무슨 얘기들이, 심지어 미술의 맥락에서 오고 갔다는 사실을 내가 세상과 더불어 놓쳤을 뿐이다. 만국의 노동자 이전에 만국보다 가까운 나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퀴어가 있었고, 나 또한 ‘그것’의 일원이 되리라. 사용자user가 아닌 나의 의지로. 여러모로 수상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내가 정말 퀴어라고? 웹 하드에서 다운로드한 게이 포르노와 이름조차 모르는 몇몇 남자들과의 번개 모임이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제 정말 몇 안 되는 주변 사람들도 그런 나를 수상쩍게 여겼다.
SNS에서 커밍아웃 비슷한 걸 저지른 날, 누구 집에서 술을 마셨고 언제나 그랬듯이 만취했다. 기리보이의 <호랑이소굴>을 따라 부르면서 저 혼자 감격에 젖었다. “많은 걸 바라지 않아 난. 단지 되고 싶어 사람 같은 사람.” 어쩌고저쩌고. 나는 “같이 위태한 친구들과 날 위로”하고 싶었지만, 오늘부로 그들은 전부 헤테로였다. 나와 달리 별로 위태롭지 않아 보였다. 계단참을 기웃대며 혼자서 담배를 피우다 울었다. 극적으로. 사용자의 시점에서 봤을 땐, 그냥 무슨 점 하나가 서울 어딘가에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깜빡거리고 있을 뿐이겠지만.
키보드로 누구를 조진다고 해서 퀴어 친구들이 생기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는 TERF와 여성주의와 무슨 래디컬 사이에서 갈피를 잃은 채, 님들의 배제주의적 전략 어쩌고를 지껄이다 불링을 당하기 일쑤였다. 다만 랄프와 랄프의 지인인 몇몇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누구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사람들 중 몇몇은 퀴어였다. 디나이얼 게이거나 트랜스젠더였다. 무엇보다 나와 마찬가지로 가난했다. “같이 위태한 친구들과 날 위로”할 수 있었던 순간, 이번에 나는 극적으로 울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잠자코 들었다. 어느 날 누군가가 나에게 말했다. 얼마 전 불링 때문에 고생하셨네요. 그 순간에서야 깨달았다. 내가 그 사람을 같은 퀴어로서 대변하고 싶었다는 사실을. 물론 퀴어는 같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를 퀴어라고 호명하는 이유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지만, 그 당시 (퀴어 당사자로서) 나에게 중요했던 것은 무엇보다 내가 거의 유일하게 알고 지낸 누군가가 혼자 모욕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 사람과 내가 친한 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사람은 음악을 만들고, 나는 글을 쓴다.
나에게 글은 여전히 무기에 가까웠지만, 언제까지나 ‘그것’을 허공에 대고 휘두를 수는 없었다. 불링 때문에 여기저기서 내가 아닌 사람들이 죽어 나가고, 이를 악문 채 성난 여론의 화신으로 다시 태어나고, 렉카 계정을 파고, 무슨 대의를 주장하다 저 혼자 자빠지고, 그 사람을 무심코 부축하는 모습이 탄로나 새로운 표적이 되고, 가스라이팅은 필수, 현피는 선택, 존나 가슴이 뛰는 대로 자판을 누르다 보면, 내가 퀴어가 아니라, X 같은 일론 머스크랑 붙어먹으려고 자기 정체성을 보이콧하는 미친 새끼가 된 것 같았다. 물론 그 정도로 트위터 세상에서 난리 치기엔 화력이 부족했지만, 그 사실만으로 나는 생각보다 운이 좋은 셈이다. 그렇다. 트위터는 이전과 다른 세상이 됐다. 바이럴 광고는 솔직히 내 알 바가 아니고, 그냥 여기는 주변 사람들, 아니 정체가 묘연한 온갖 계정주와 더불어 미쳐가는 중이다. 문제는 여기서마저 나의 일상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면, 이번엔 정말 뒈질 거라는 사실, 피드가 흐르는 속도로 잠들 때마다 안심이 된다고 토로하면, 누군가는 맞장구를 쳐주겠지. 그 누군가의 활동을 기웃거리다, 개인 블로그를 이글루스에서 네이버로 옮겼다. 거기는 뭔가 노다지처럼 보였다.
9.
2023.05.04.
미술 자체에 관해서 굳이 써야만 할까?
10.
돌이켜보면, 굳이 써야만 하는 미술은 없다. 문제는 내가 청탁 관계에 얽매인 채, 지난 몇 년간 유닛 이후로 업데이트가 중단된 CPU를 통해 어떻게든 ‘미술’을 연산하다 말다, 끝내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 그로 인해 나에 대한 시선의 주목도는 떡락했다. 내 주변에 남은 것은 고작해야 성가신 픽셀 조각들. 아니, 나름대로 장기 거주하고 있는 원룸 속에 집주인 몰래 부려놓은 쓰레기와 먼지, 한여름을 타고 날아와 꼬이는 날파리 정도. 김희천은 <바벨>(2015)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로그아웃하고 집으로 가고 싶다.” 나에겐 여기에 로그인했다는 감각조차 없는데, 이를테면 <바벨>이 모델링 차원에서 재/구성한 잠실 일대와 ‘그곳’에 무슨 첨탑처럼 우두커니 서 있는 롯데타워를 여기 창문 밖에서 조감하는 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나는 잠실에 갈 일이 드물다. 2호선 문이 열릴 때, 여기가 잠실 스테이션이구나, 짐작한 적은 있을지도. 아시다시피 우리 집은 석계역 근처고, 주변은 재개발 단지로 묶인 황무지 그 자체다.
황무지에 우두커니, 그러나 첨탑이라기엔 너무 작게 몸을 구기고 있는 여기 몇 호는 이전보다 조금 덜 쓰레기장처럼 보이지만, 지금 기준으로 한여름이 오기까지 아직 시간은 남았고, 그 전에 대청소를 하지 않는다면, 작년처럼 다시 부패할 것이다. 날파리와 함께.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로, 본의 아니게 애인 집에 얹혀사느라 여기에 올 일이 드물어졌다. 같이 살던 고양이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고, 경기도 모처에서 장례를 치르느라 난생처음 신용카드를 리볼빙하는 파국에 가까운 선택을 내렸다. 한동안 침대 매트리스나 이불보에 묻은 고양이 털을 샅샅이 건져내는 척하다가, 여기는 사람도 고양이도 살 만한 곳이 아니라고 결론 지었다. 모든 게 여기로 이사 온 내 잘못이다. 리볼빙의 여파는 일종의 원죄 같은 것이다. 애인 분이 말하기를, 그래, 너네 집은 좀 미친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동거 비슷한 걸 하다 보니, 주말마다 이태원 소방서 앞에서 약속을 잡기가 주저됐고, 실제로 무슨 일 때문이 아니면 굳이 이태원을 찾지 않았다. 나는 퀴어인가? 패션 퀴어의 혐의로부터 자유로운가? 그렇다. 내가 커밍아웃 전후로 애인 관계로 지낸 사람들은 전부 여자였고, 무슨 데이팅 어플을 켜서 남자인 파트너를 물색하는 건 대개 연애가 끝난 이후였다. 블로그에 적은 글들은 대체로 그런 내용이었다. 여기가 노다지였던 건, 무슨 포털 사이트의 재량 때문이 아니라, 내가 비평하기를 마다한 채, 미술과 하등 상관없는 뭔가를 (트위터에서 성나버린 여론을 잠깐 따돌린 채) 끄적였기 때문이다.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을 저 혼자 먹어 치우는 나에 관해서.
나와 무슨 전시를 기획한 A씨는 어느 날 ‘자기 이론’이라는 생소한 단어를 일러줬다. 영어로 번역하면 좀 까다로운데, 하여튼 그것은 오토픽션autofiction이라고도 합니다. 저도 잘 모르기는 하지만, 일단 자기 얘기를 풀어헤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치밀하게. 애인의 집으로 돌아와 블로그를 드문드문 돌이켜봤지만, 딱히 치밀해 보이는 글은 없었다. 그와 별개로 자전적이라고 할 만한 요소들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기는 했다. 약물 자해를 했음. 오늘도 뒈지고 싶었음. 애인 집에서 도망치다시피 해, 무슨 모텔방에서 1주일 남짓 투숙함.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그 사실은 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다시 이태원으로 가다. 전시를 만들고 있다. 내가 퀴어일 수 있다면 정말 좋겠네. 반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로서는 이례적으로 40편에 가까운 포스팅을 기록했다. 트위터도 병행했으니, 신생공간 시기와 비교하더라도 뒤처지지 않는, 오히려 ‘그것’을 선회할 법한 생산량이었다. 그 결과물이 카드빚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대책도 마련해주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애초에 글이라는 건 가난의 수렁일 뿐.
미술은, 나의 망가진 CPU를 감안하더라도 갈수록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올라퍼 엘리아슨을 떠올려보라. 내가 가본 적도 없는, 앞으로도 갈 일이 없을 터빈 홀에 인공 태양을 띄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본과 노동력이 착즙됐을까? 그게 도대체 ‘날씨’랑 무슨 상관인지?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서 인공 태양 운운했다간 무슨 테러를 당할지도 모른다. 여전히 (지자체로 구획된 영토를 갈아엎지 않는 이상) 서울 중심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미술계의 경우, “포스트 인터넷”이 내세운 가상의 물신을 대체하듯 조각 붐이 일었고, 그 이후엔 조각스러운 작업들이 무슨 쇼윈도나 디저트 카페에 한 입 거리로 진열되고 있다. 공중에 뿌려진 자본, 아니 기금의 잔해를 모아 다시 소비주의를 장려하는 ‘굿즈’로 팔리는 것처럼. 최소한 나는 ‘그것’을 소비할 겨를이 없다. 바쁘다, 바빠, 현대적으로 가난한 삶이여. 퀴어적인 빈곤함이여.
11.
랄프와 함께 한 수유동 투어의 녹음 버전은, 내가 초대한 두 사람과의 인터뷰와 함께 조각내서 이리저리 편집하기에 이르렀다. 그 두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h와 A씨였다. 이번엔 무슨 미술관에서 나눠준 작가 1인당 얼마의 예산에 따라, h에게 사례비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이 감격스러웠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가 나를 왜 비평가가 아닌 작가로 섭외했는지, 성수동 모처의 카페에서 진행한 짧은 미팅에 따르자면, 역시나 개인 블로그가 큰 기여를 했다. 나는 어느새 작가처럼 글을 쓰고 있었다. 오토픽션이 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것’을 의식하면서. 미술을 무/의식적으로 에둘러 가던 차에, 다시 전시장으로 반려될 처지에 놓였다.
이번에는 관객들 앞에서 정말 뒈지고 싶지 않았다. ‘우리의 공동체’를 꾸리기 위해선, 관객이 아니라 나와 얘기 나눌 수 있는, 당연하게도 현실에서 실체를 갖추고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다. 줌으로 인터뷰를 하는 것도 괜찮겠지만, 액정의 표면에 비친 나의 멍청한 얼굴을 헤아리는 게 좀 지겨웠다. 두 사람과 스케줄을 조율하면서, 각자 다른 날짜와 시간대에 랄프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마이크를 비롯한 모든 음향 장비가 거기에 있었으므로. 원래는 더 많은 사람들과 얘기 나누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랄프와 함께, 그들이 있는 곳으로 가서 미술이든 뭐든 최대한 자유로운 주제로 떠들고, 그 결과물을 취합하고, 각각의 공간음을 겹겹이 쌓았다가 극적인 순간에 무너뜨리고, 어쩌고저쩌고.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한 두 사람을 포함해, 그들은 누구인가?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사람이지? 그들 중 누구도 신생공간의 당사자는 아니다. 그들 중 누군가는 나와 친분이 있지만,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다만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다. 웹에서 (미술 그 자체에 미치지 못하는 구구절절한) 쓰레기를 건지다가 우연찮게 마주쳤고, 서로의 존재를 눈치챘으며, 나는 이 작업을 빌미로 그들과 동료가 되고 싶다. 무슨 해적선의 선장이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물론 h는 나의 전 동거인으로서, 그런 나를 의심에 부쳤다. 그 사람들이랑 붙어먹지 못해도, 자살만큼은 사절이야.
예산을 포함한 여러가지 문제에 시달리다, 결과적으로 두 사람만이 남았다. h의 의심이 적중했을지도. 그렇다. 나는 아무렇게나 저지르고, 그 뒤에 남은 것을 치우지 않는다. 설거지도 화장실 청소도 심지어 비평가를 자처한 채 떠들어댄 모든 글과 말들도. 이 작업도 그렇게 남겨질 수도 있지만, 계약서에 서명한 이상 어떻게든 해내야 된다. “사람 같은 사람”이라면.
12.
나를 둘러싼 담화의 형식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13.
서울을 떠도는 소문의 중심에는 (오래전의 기억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내가 있고, 나는 바로 그 소문을 퍼뜨리는 중이다. 오토픽션을 글의 질료로 삼았던 이유는, 무엇보다 ‘나’라는 주어를 복원하기 위해서다. 비평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선 자기 객관화를 무릅쓴 결과물이다. 달리 말하자면, ‘나’를 의식적으로 물리치고 나서야 비평이라는 제의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돌이켜보면, 여러모로 이상한 일이다. 작업과 마주치는 사람은 다름 아닌 ‘나’다. 그러기 위해서 전시장과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서울, 아니 서울의 벽지를 소문처럼 떠돈다. 그 모든 과정은 내가 되돌아온 여기, 앞으로 뭔가 서술하게 될 지면 위에 아무런 족적도 남기지 않는다. 내가 여기 아닌 거기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면, ‘그것’은 비평이 아니라 르포에 가깝다. 혹은 르포에 가까운 에세이거나. 왜 나의 글은, 오랫동안 비평일 수밖에 없었을까? 설사 일련의 결과물들이 비평에 대한 혼자만의 오해에서 비롯했다는 또 다른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아니, 애초에 내가 왜 그런 식으로, 저 혼자서 비평을 오해했는지 의문이다.
뭔가 정신분석 비슷한 걸 시도할 수도 있다. 언제부터 비평으로 구실하기 위한 글을 썼는지 자문해보면, 나는 자연스럽게 다시 아파트로 되돌아간다. 학교 부적응자이자 자기 얼굴에 대한 혐오에 시달렸던, 그로 말미암아 말 그대로 미쳐버린 나를 만회하기 위해 강박적으로 쓰고 읽었던 글들. 무슨 맥락인지도 모른 채 옮겨 적었던 난잡한 경구들. 그 모든 것들은 비평으로 지속할 수 없는, 다만 나에 대한 최소한의 쓸모를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나의 쓸모를 비평으로 최대한 형상화했다. 나는 덕분에 선생님한테 처맞지 않았고, 나를 비웃는 미친 새끼들을 자체 모욕할 수 있었으며, 아무도 없는 여기, 아파트 거실에서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죽치는 대신, 그곳과 일종의 작업실로 구실했던 나의 방을 분리하기에 이른다. 여기에서 이번에는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미쳐갔다. 모든 소음과 차단되기를 바랐다. 방문을 걸어 잠근 채, 반/자본주의니 뭐니 하는 개소리에 사로잡히기 위한 밀실 속에 스스로 처박혔다. 왜 개소리인가? 소음이 득실거리는 주변, 즉 비평의 바깥으로부터 ‘나’를 소외시켰기 때문이다. 주변의 시선에서 자유롭거나 그래야만 한다고 구구절절 외웠으므로, 거울에 고개 처박는 일이 드물어졌다. 얼굴에 번진 역병은 갈수록 잦아들었다. 문제는 비평의 바깥이 아닌 다른 곳, 이를테면 졸업 이후에 맞닥뜨린 “현장”에서 비평 같은 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우친 순간이다. 그렇다. 나는 영화에 관해 썼지만, 그 결과물을 카메라나 붐 마이크처럼 남들 앞에서 유용하게 내세울 수 없었다. 나의 쓸모가, 비평과 더불어 허물어졌다.
이 모든 걸 글로 소묘하기 위한 시간은 대수롭지 않다. 나는 내담자로서 뭔가를 토로했고, 그와 관련해서 정신분석이든 뭐든 간에, 단순히 메소드로 귀결되지 않는 실질적인 절망을, ‘그것’의 본질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럴싸한 답변을 고대하고 있다. 정말 섹스 불감증인가요? 제가 상징적인 아버지를 죽인 다음에 도마 위에 가지런히 플레이팅하지 못했기 때문인가요? 아니면 본의 아니게 아파트 키드로 타고났다는 사실로 말미암은 원죄 같은 건가? 다시 거실로, 비평의 바깥으로 기어 들어가서 이 모든 질문을 털어놓기엔, 어느 시점부터 비평가 메소드를 체화한 내가 너무 완전 무결하다. 나는 절망적이지 않다. 나는 글쓰기와 별개로, 처절하게 생존하지 않는다. 직업적인 윤리에 따라 메소드 차원에서 나를 재/구성할 뿐이다. 정신과에서 진료 받는 시간은 10분 이상 지속된 적이 없다. 약을 좀 증량해달라고 호소할 뿐이다. 물론 그 약으로 자해할 것이란 사실은 영원히 우리 사이의 비밀로 남았으면. 방문을 걸어잠근 채, 더 이상 자살을 무릅쓰지 않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해에 너를 포함한 모두와 함께 치렀던 연말 이후로 더 이상 미칠 겨를이 없었나? 내가 박살낸 관계는 저절로 회복되는 중인가?
14.
블로그에 쓴 글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비평가로서 자살했다.” 이제와서 고쳐 쓰자면, 나는 여기에서 자살했고, 비평가로서의 나만이 살아남았다. 그 사람은 내가 조져버린 출간 기념회든 뭐든 간에, 공적인 대화를 마다하지 않은 채,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유려하다.
15.
인터뷰는 계속된다. h에 따르자면, 미술이 아름다운 건 모순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다만 우리는 모순 그 자체에 매혹될 뿐이다. 오래전 무슨 평론가가 말했듯, 그 당시의 ‘나’는 대충 넘겨짚었지만, 하여튼 신생공간의 문제를 꼽자면 바로 문제될 것 없는 미술을 한다는 점이다. 데이터라는 ‘문제적인’ 상징을 섬기면서. 데이터의 치하에선 모두가 객체로 대상화된다. 언젠가 네가 말했지. 상호 작용하지 않는 점이라고.
16.
유닛이 일인칭 화자로서 서술할 수 있는 세계상은, 가상과 현실 사이로 접혀 들지만, 딱히 주름지진 않은 공간, 혹은 ‘그곳’이 늘어뜨린 무한한 표면이다. ‘그곳’을 리미널Liminal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일종의 점이지대로 구실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유닛의 관점에서 서울은 여전히 기이하다. 자신을 지도 인터페이스로 조감하는 동시에, 주변에 늘어선 마천루가 서로를 되비추면서 자가 증식하는 잔상들, 유리 파편처럼 쏟아지는 인파에 휩쓸린 채 갈피를 잃는다. 자기조차 잔상이 아닌지 의심스럽지만, 그럼에도 사용자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 하염없이 여기 아닌 곳으로 거슬러 오른다. 다시 서울 어딘가로 되돌아오기 위해서. 서울은 (리미널 스페이스처럼) 경계가 모호하다기보다, 도시의 경계 안쪽에서 백색소음 같은 단조로운 일상이 메아리친다는 사실 때문에 리미널하지 않다. 유닛은 절망적으로 죽을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여기에 로그인하기 위한 사용자의 권한이 사라지지 않는 한, 유닛, 아니 객체로서의 자기 결정권은 죽음도, 죽음에 이르기 위한 절망도 무릅쓸 수 없다. 그렇다. 인파는 서로에게 무관심한 점point들의 행렬일 뿐이다. 벅차오르지 않는 군중. 무작위하게 흩어지고 마는.
내가 사용자일수록 유닛으로서의 ‘나’는 마천루 한가운데 있든, 후미진 골목길로 접어들었든 간에 자신의 시야로부터 멀어진다. 사용자는 그런 유닛에게 이끌린 채, 혹은 ‘그것’이 이끄는대로 로그인을 포함해 모든 선택지를 말 그대로 실행할 뿐이다. 결국 “유닛의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누가 먼저 공모했는지 헤아릴 수 없는 자동화된 프로세스다. 그와 같은 결론은 비평적이라기보다, 유닛과 자기 동일시함으로써 나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헤아리려는 절박한 시도에 가깝다. 나는 절망적이지 않다. 나의 죽음은 번번이 실패할 것이다. 더 이상 실행할 만한 가치가 없으므로. 그렇다고 짐작한 채, 일상의 메아리를 노이즈 차원에서 캔슬링한다.
어떤 BGM도 들리지 않지만, 시야의 배후에 도사린 누군가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나는 호랑이소굴로 들어가. 나는 호랑이소굴로 들어가. “그냥 살다보니. 어느새 난 여기.” 정말 그냥 살았고, 지난번이 마지막 자살 시도가 될지 어떨지 헤아리기엔 시간은 그냥 속절 없이 지났다. 아니, 여기에 이르기까지 생략된 것에 가깝다. 서울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숨이 막힌다. 좆 같은 여기가 다름 아닌 서울인데도 불구하고. 맞아. 나의 존재 자체가 존나 리미럴하지. 유닛으로 말미암아 ‘나’를 숨기고 싶었을 뿐. 우울증이 가시자, 절망의 해상도는 높아지기 시작한다. 시야에 달라붙은 날파리 새끼들이 실제로 눈깔을 파먹고 있지만, 이번엔 내가 원하기 때문에 죽을 수 없다. 아니, 당분간 죽고 싶지 않다. 나는 모순적이지만, 아름답지 않다.
17.
두 눈은 오랫동안 “눈깔”이 아니었다. 양안 시점으로 상연하는 파노라마일 뿐. 현실을 찢어발길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파노라마로 수렴되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시선의 이해관계를 의식하면서, 때로는 점들에게 둘러싸인 상태를 만끽했지만, 우리는 그 이상으로 (점이 아닌) 서로에게 감응하지 않거나 못했다. 각자의 현실, 혹은 ‘그것’을 눈깔처럼 파먹은 자리에 들끓는 이런저런 절망에 관해 캐물은 적이 없다. “문제될 것 없는 미술”이라는 표현이 뒤늦게나마 암시하는 것은, 사실 데이터에 대한 우상화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바로 그 데이터가 재/생산하는 이미지, 이미지를 구현하는 파노라마, 불투명한 장막을 작업 차원에서 헤집는 주체가 누구인지, 혹은 누구일 수 있는지의 문제를 장막 너머로 숨겨버린 우리의 패착일지도 모른다.
오래전 교복 차림의 내가 실감했듯, 주체에겐 얼굴만이 있다. 주체로서의 내가 셀피로 기록한 초상은 일종의 데드 마스크다. 그 자체로 무해하고,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그런 식으로 본뜬 뒤에 남겨진 원본으로서의 얼굴을 식별할 수는 없다. 감시 카메라나 얼굴 인식을 일삼는 무슨 어플은 언제나 우리, 아니 주체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정면이 아니면 주체는 자기 얼굴마저 잃어버린다. 나의 얼굴이 망가졌을 때, ‘그것’은 내가 길들일 수 없는 불가해한 대상이었다. 모가지에 매달린 채 너울거리는 바람 빠진 풍선이자, 나를 감시하는 시선의 주인, 그 앞에서 나는 매번 소스라쳤다.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등굣길이나 교실에서 스쳐간 무수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아니 그들이 치켜뜬 “눈깔”은 내 주변을 떠돌면서 어지른 온갖 지형과 지물 사이에서, 나를 훔쳐보고, 감시하고, 끝내 처벌했다.
얼굴에 점점이 박힌 징그러운 “눈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내 모가지를 꺾을 필요가 있다. 결과적으로 나는 주체가 아니다. 얼굴, 아니 데드 마스크를 빚어내 ‘그것’이 바라보는 대로 주변의 시선에 응대할 뿐이다. 현실 속 누군가를 이미지로 대상화한 채,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스크롤링을 반복하는 것은 어느새 나의 취미가 됐다. 섹스를 거절하지 않았고, 섹스하기 위해 그들에게 처절하게 매달렸지만, 그 과정에서 질척이는 몸은 오르가슴을 위한 매개체일 뿐, 내 모가지 아래에서 실재하지 않는다. 그렇다. 너와 나는 서로를 따먹는다. 그 이후에 엄습하는 (신체적인) 피로감은 우리의 관계를 무디게 만드는 버퍼링에 그친다. 미술과 별개로, 우리 사이는 언제나 문제될 게 없다. 이미지로서 겹겹이 중첩된다. 화면이 일그러지는 순간, 나는 다시 소스라치고, 오로지 정면을 향해서 도망쳤다. ‘그곳’이 나를 주체로 환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픽셀이 튀는 소리는, 내가 바라보길 마다한 절망의 기척, 혹은 절망스러운 눈초리였다. 그렇다. 우울과 불안은 내재적이다. 우리가 서로에게 내지른 비명은 화면에 부딪히다 말다, 픽셀 조각처럼 부서진다. 저기 발치에서 ‘나’와 무관하게 시들어간다.
비평가로서 데이터라는 형식에 골몰했던 건, 내가 “운석”이 불시착한 자리를 맴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운석은 시적인 메타포이기 전에, 나의 비명이 화석화된 표본으로서 여기에 굴러떨어졌다. 운석 같은 작업들이 재료로 삼았던, 데이터 차원에서 일그러진 노이즈는 내가 독해할 수 없는 ‘이미지’로 전락했다. 그 무수한 이미지들. 아카이브로 귀결되기엔 너무 무작위한 실패의 기록들. 신생공간, 아니 우리의 공동체가 지속 불가능하다고, 이게 마지막이라고 결론지었던 (추문에 가까운) 몇 가지 이유 중에서 나에게 유효한 하나를 꼽자면, 그건 바로 현실에서 우리, 혹은 나에게 치민 욕망의 경제다. 욕망은 타산적이지 않고, 개개인이 무릅쓴 노동이나 고역을 돌이켜보면 도무지 수지가 맞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나를 여기 아닌 곳으로 부르는 욕망은 무슨 중산층이 사유화한 레디메이드가 아니라, 내가 여기로 내지른 비명의 메아리다. 나는 ‘그것’과 마주할 것이다. 가끔 너무 절망적으로.
18.
인터뷰는 계속된다. 나는 유닛이 아니다. A씨에 따르자면, 그러나 유닛은 나의 불확실한 정체성에 대한 징후 같은 것이다. 점이지대 속에서만 자기를 정의할 수 있는 존재. 당신이 무슨 성별Sex을 가진 사람과 섹스하거나 더불어 사는지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경계 안팎을 넘나들면서 자신의 욕망을 헤아리다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것이야말로 퀴어가 되는 과정이다.
19.
나처럼 스스로를 퀴어로 오해하려는 사람에겐 욕망이 물컹거리지 않는다. 나는 (트랜스일 수도 있는) 여성과 달리 질이나 질의 내벽을 가져본 적도, 사춘기 전후에 가슴이 부푼 적도 없으며, 그러기 위해 무슨 시술을 무릅쓸 필요도 없다. 내가 죽음 이후에 추스린 몸은 얄팍한 허울에 가깝다. 실체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자주 그렇게 느껴진다. 죽음을 반복해도 죽일 수 없는 것. 그렇기 때문에 나를 죽음으로 부르는 것. 허울은 직조된 게 아니라, 약 기운 때문에 가물거리는 의식을 붙잡는 낯선 손길, 다시 깨어나자 ‘그것’이 놓쳐버린 의식의 끝자락이다. 픽셀은 그 과정에 대한 은유일 뿐, 내가 상실한 대상, 이를테면 신체를 구성하는 단위로 헤아리는 건 ‘사용자’가 저지를 법한 기만이다. 나는 유령인가? 안타깝지만, 나는 죽는 데 실패했고, 현실은 구천 같은 게 아니다. 여기엔 살아남은 사람들 투성이다.
모든 데가 서울이고, 각자의 협소한 생활 반경 속에서 서울 아닌 곳을 떠올리거나, 그곳으로 가기 위해 서두르지 않는다. 인파에 깔리기엔, 오후가 너무 평화롭다. 나는 무사하다. 석계역에서 작업실까지 가는 데 20분 남짓을 허비한다. 그 사이에 스크롤되는 것은 액정 뿐이다. 똑같은 풍경에 실린 채로 허우적대는 건 나의 몸이 아니고, 내가 아니다. 헛구역질은 그냥 식도염 때문이다. 내장이 뒤틀린 적도, ‘그것’을 게워낸 적도 없다. 나에게 죽음은 헛구역질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박히는 걸 좋아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박은 건 너무 오래된 일이다. 이태원 어디서 나한테 추근댄 남자는 나의 몸이다. 잠깐 길가에 벗어둔 허울이다. 그렇다. 욕망은 물컹거리지 않는다. 욕망한 적이 없다. 몸 어딘가가 헐거울 때마다, 인데놀을 주섬거린다. 비체적인 것은 여성적인 것이다. 비체abject들이 자기 부정성으로 말미암아 몸의 껍데기를 뒤집을 때마다 구역질나는 내부가 쏟아진다. 문드러진 내장과 살점들. 고통은 물질로부터 온다.
물질, 혹은 물질로서의 몸을 재/구성하는 비체적 존재가 (때로는 처절하게) 몸부림칠 때, 나는 관객으로서 ‘그것’에 감응하지만, 동시에 아무것도 게워낸 적 없는 나의 정체성을 심문하게 된다. 물론 비체는 여성 그 자체로 타고 나지 않는다. 젠더 차원에서 규정된, 이를테면 남성 화자가 성적으로 감응하기 위해서 필요로 하는 ‘여성성’을 전복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스스로에 대한 타자로 여기에 존재하는 방식이 비체가 될 뿐이다. 관객과 남성 화자는 어떻게 같거나 다른가? 나는 답변을 유보한 채, 그 지연된 시간으로 말미암아 욕망하기를 실패한다. 나는 물컹거리는 욕망을 나의 손길로 더듬거나 스스로 도륙할 수 없다. 내가 섹스하기를 바랐던 대상이 포르노로 재현된 여성의 몸인지, ‘그것’에 굴복하기 위한 수동적인 체위나 제스처, 이른바 따먹히기 위한 앳된 소년인지, 이 모든 걸 부정할 수 있는 가부장적 권위인지, 일일이 분별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혼란스럽다. 아니, 그냥 다시 인파 속으로 잦아들거나 숨는다.
벽장의 문을 닫는 건, 단순히 커밍아웃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탱크>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없는 몸”은, 돌이켜보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타고난 ‘남성’이 낯선Queer 존재와 마주했을 때 여기서 픽셀 단위로 흩어지고 만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해 그는 타자와 더불어 욕망하지 않기를 ‘사용자’로서 선택했다. 우리는 벽장 틈새로, 저기서 떠돌고 있는 타자를 곁눈질할 뿐이다. 언젠가 자신에게 최적화된 인터페이스가 도래하길 바라며.
20.
그런 날은 도래하지 않을 것이다.
21.
오늘도 헛구역질을 반복한다. 무언가를 읽고 쓰면서 오후를 지새고, 그 오후가 무한하게 지속되길 바라지만, 시간이 저무는 감각에 사무친다. 아무도 여기로 초대할 수 없다. 아니, 내가 선별한 사람들, 너무 낯설지도 친밀하지도 않은 누군가가 나를 찾으면 좋겠지만, 스팸 메시지를 제외하면 알람이 울리는 일은 드물다. 죽음에 가까운 이벤트가 필요한가? 안타깝지만, 이제 벽장 속에서 썩어 문드러진 나의 몸, 아니 시체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주변은 고요할 것이다. 지금보다 가난할 필요가 있다. 남은 재산을 허투루 탕진하는 게 아니라, 자본주의든 뭐든, 개인을 초월하는 제도에 착취당한 자로서, 최대한 고립된 채 죽어버리는 것이다. 제도를 고발하는 혼자만의 탄원서가 발견되고, 그게 언론을 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문제는 누가 그걸 누릴 것인가? 내 무덤이 무슨 기념비가 된다면, 그곳을 우울한 표정으로 배회하는 사람들 중 나를 대신할 사람은 누구인가? 모두가 나와 함께 하지만, 나는 기념비로서 묵묵하다.
마찬가지로 알람은 울리지 않는다. 완벽한 암전. 벽장 속을 탈탈 털어서 여기에 남겨진 찌꺼기, 그 모든 추문은 여기서 사라진 나와 무관하다. <우리의 공동체>가 생략한 것은 대체로 그런 얘기다. ‘우리’는 더 이상 죽일 수 없는 것, 혹은 허울만을 뒤집어쓴, 반드시 내가 아닐 수도 있는 누군가의 존재를 헤아릴 겨를도 이유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로부터 멀어진다. 각자의 기억 속으로 뻗은 낯선 손길은 의식의 끝자락을 물리친 채, 지금 우리가 나누고 있는 대화, 실시간으로 녹음되는 목소리를 가다듬을 뿐이다. 나는 가까스로 헛구역질을 참는다. 주변에 늘어선 마이크 몇 대가 백색 소음을 집요하게 앰비언스로 환원하고 있으므로.
맞아, 미술이 아름다운 건 모순이 있기 때문이지. 지금 우리 주변에서 아우성치는 모순, 혹은 비명의 메아리를 어떻게 증폭할 것인가? “상호 작용하지 않는 점.” 나는 당신이 이제야 깨달은 바와 마찬가지로 ‘그것’을 신뢰하지 않아. 오래전 우리가 같이 살았던 집, 그 오래된 빌라 건물은 재개발에 휩쓸린 채 허물어졌고, 거기서 보냈던 끔찍한 나날들 돌이켜보면, 그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님도 님이지만, 사실 나도 거의 미쳐있었다. 왠지 모르게 음침한 기운이 감돌던 거실에서 무슨 사람들과 술을 퍼마셨던 기억, 그중에서 여전히 연락 주고 받는 사람이 있다는 게 더 이상하지. 우리는 오후를 만끽한 적이 없다. 뒤이어 내가 말하기를, 미술이 아름답다면, 그걸 둘러싼 업계는 좀 다른 의미에서 문제적이다. ‘디저트 조각’이라니,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디저트 대신 무슨 전시를 날로 먹어 치우는 사람들이 나날이 배불러 보임.
그래 보임? 하여튼 저는 이제 최대한 잠수탈 것이다. 안으로, 내 안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누가 인스타 팔로워가 2천이 넘어. 그러면 계폭하고 나서 겸허한 마음으로 작업해야지. 물론 저의 팔로워는, 아니, 아닙니다. 인터뷰 여기까지. 랄프가 마무리하는 동안 저 혼자 밖에서 담배 피우면서, 오늘만큼은 죽기 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마이크가 뿌리째 흔들리는 소리.) 녹음 파일이 랜더링되기도 전에 자리를 뜬다. 여기로 되돌아오는 사이에 액정이 무한하게 스크롤된다. 랄프가 보낸 메시지에 따르자면, 오늘 하루도 무사히.
22.
“더 이상 내일이 기대되지 않아.”
그 메시지의 첫 수신자는 랄프였다. 우리는 수유동 모처에서 살았지만, 서로의 존재를 눈치채기 위해선 고등학교 같은 반에 이르러야 한다. 나는 이제 막 친구들과 소원해졌다. 술에 취한 채 아파트 옥상으로 비틀거리며 올라간 건 그보다 한참 뒤의 일이다. 내가 쓴 무슨 글을 랄프가 읽기 시작한 건 우연찮고, 그래서 여러모로 하찮게 느껴지는 일이다. 과거는 복잡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교복을 차려입은 우리에게 내일은 여기서 벗어나기 전까지 정해진 수순, 그 사실을 저주하면서 같이 학교에서 무단으로 도망쳤다. 덜미를 잡힌 건 나 혼자였는데, 랄프의 성적은 나와 다르게 굴곡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글을 썼고, 랄프는 상위권 언저리에 있는 무슨 대학교에 들어갔으나, 어느새 밴드의 프론트맨이 됐다. 나는 종종 그 당시의 노래를 유튜브로 듣는다. “시시각각 저편에서 붐비세.” 붐비세가 무슨 의미인지 캐묻지 않았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랄프가 포스트 락 어쩌구의 장르에 심취했다는 것. 나는 프론트맨도, 유튜브에 자기 작업을 업로드할 만큼 수완이 좋은 사람도 아니라는 것 정도.
녹음 파일에서 나는 뭔가 혼잣말을 하고 있지만, 랄프가 그런 나를 뭐라고 독려하지 않았다면, 오래된 동네에 대한 기억, 아니 담화를 스스로 풀기엔 숨이 찼을 것이다. 아파트로 이사하고 나서 모든 게 잘 안됐구나. 이제 우는 거야? 아니, 그럴 리가요. 빌라 주변은 여전히 전원적인 풍경을, 생각보다 고른 언덕길 곳곳에 우거진 수풀과 함께 연출하고 있었고, 오후의 햇빛 아래서 우리가 마주칠 법한 이웃은 내내 자취를 감췄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꾸며낸 온실 속 화초가 된 기분이었다. 햇빛은 ‘사용자’가 몸소 밝히신 인공조명인가? 누가, 혹은 무엇이 여기에 폭탄을 던지거나, 방사능 유출에 앞장설 것인가? 안타깝지만, 여기는 세상과 달리 멸망한 적이 없다. 아파트로 이사한 내가 모든 걸 그르치던 와중에, 여기로부터 격리됐을 뿐. 랄프의 노래가 비명 대신 메아리친다. “머무를 땅과 노래.” 문제는 여기서 뭐라고 흥얼거리며 땅을 경작했다간 주거 침입한 죄로 고소 먹을 거라는 사실이다. 다름 아닌 나의 이웃들에게. 그들의 존재 내지는 여기에 입주한 수요층을 리서치하는 대신, 계속 걷기로 했다.
나와 다른 맥락에서 프론트맨은 아니지만, 하여튼 랄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던 무슨 음악가, 아니 이민휘가 만든 앨범 중에서 즐겨듣는 트랙은 <미래의 고향>이다. 나에겐 미술과 마찬가지로 음악을 비평할 수 있는 역량이 없고, 그냥 가사만을 곱씹으면서 ‘그것’과 동행한다. “자꾸만 사라지는 이 세계에서 서로를 스칠 때 같은 노래를 부르지.” 무엇보다 “오늘 부르는 노래는 내일 부를 노래.” 그 사이에 후렴구처럼 반복되는 “라라라.”를 듣는 동안 또 다시 시간이 저물고 있다. 사운드 디자이너인 목소는 동명의 앨범을 다음과 같이 풀어쓴다.
“한없이 지연되면서도 다가오는 무언가로 상상되었던 ‘미래의 고향’은, 들을수록 매일 실현되고 있는 환대의 약속으로 읽힌다. 만나기로 한 장소들이 사라지더라도 ”오늘 부르는 노래“만은 남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자라나 마주칠 것이며, 먼 곳으로 달려가 더 많은 얼굴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나를 잊은 당신이 길 위에서 웃음이나 슬픔을 문득 물어 온다면, 나는 ”같은 노래“를 증표처럼 소중히 흥얼거릴 것이다.”
문제는 내가 여기서 누구도 만나기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랄프조차 여기를 모르고, 그 당시 친구로 어울렸던 무리는 여기 아닌 곳으로 흩어졌고, 나는 그들을 영원히 마주치지 않기를 바란다. 잠에서 깨어나면, 그들 중 누군가가 나 대신 너에게 용서를 구한 것 같은 더러운 기분에 사로잡힌다. 너와 친구 사이였다고 자족할 때마다 스스로가 역겹지만, 우리가 친구인 적이 없다면, 다시 우연찮게 만날 수 있었을지, 너의 부고 소식이 문자로 날아왔을지 의문이고, 그 문자는 스팸 메시지에 실린 채 아득한 과거로 스크롤링, 나는 더 이상 ‘그것’을 들춰보지 않는다. 네가 죽기 전까지 너는 얼마나 자랐을까? 나와 무관하게? 네가 죽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우리가 마주칠 수있는 가능성을 점치다 지샌 오후가 여기에 드리울 때, 여기는 무의미해진다. 너는 길 위에 서 있지 않다. 아무 데서도 머물지 않는다. 녹음 파일을 꺼버린다.
너는 무슨 카페에서, 담배가 동날 때까지 나와 함께 앉아있다. 다시 오후가 지속된다. 너에겐 표정이 없다. 네가 의식처럼 가물거리는 순간, 너를 놓친 것은 누구의 손길인지, 만약 그게 나였다면, 그 사실을 입증할 수 있다면, 나는 여기 아닌 곳에서 지금보다 절망적일 것이다.
23.
네가 정말 허구를 위한 소실점이라면, 그 허구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을 것이다.
24.
고향은 존재한 적이 없고, 다만 ‘그곳’이 있을 법한 미래로 거슬러 오른다. 계급적인 맥락에서, 인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은 첨탑 아래를 떠돌다가 여기에 자족하기 마련이지만, 최소한 여기를 고향으로 삼는 일은 마다한다. 아파트든, 내가 살고 있는 생활형 오피스텔이든, 둘 중 어디에도 미치지 못할 슬레이트 지붕, 곰팡이 슨 반지하든 간에, 각자의 일상을 치르고 되돌아온 여기와 자신을 (실존적으로) 동일시하기엔, 너무 이르거나 늦다. 가난과 더불어, 나를 아직 ‘청년’으로 규정할 수 있다면, 나와 주변 사람들, 무엇보다 우리가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관계 형식 속에서 ‘우리’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너무 일렀다. 자신이 아파트 키드가 아니라는 사실을 눈치챈 지 얼마 되지 않아, 스스로를 중산층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욕망 자체를 포기한 것이다. 그렇다. 한국, 아니 서울로 수렴되는 모더니즘적 유토피아는 앞으로 영원히 대물림되지 않거나 못할 것이다. 무슨 계획도시에 1인 가구가 들어서기 위한 자리가 있으리라 전망하는 대신, 원룸이나 복합 원룸의 임대 계약을 연장하는 데 그친다.
미래의 관점에서, 여기가 고향일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고 입을 모을 것이다. 여기에 들여놓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DIY 가구나 소품 정도고, 조금 더 나아가면 어디 빈티지 매장에서 사들인 힙스런 옷가지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돌이켜보면, 조각이 괜히 디저트로 진열되는 게 아니다. ‘그것’이야말로 장소를 누린 적 없는 우리를 위한 기념비다. 상하기 전에 각자 알아서 포크로 발라 먹거나, 장소가 아닌 어딘가로 딜리버리하거나. 후자로 말미암아 최소화된 배달 시간을 가늠하는 일과 별개로, 미래는 자꾸만 지연된다. 앞으로도 고향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란 예감이 들지만, 그마저 저버리면 여기에 머무를 이유가 사라진다. 레트로가 가본 적 없는 고향을 유령 시점에서 헤아리기를 반복한다면, 포에버리즘, 직역하자면 영원주의는 우리가 머무는 여기가 (레트로 마니아가 자기 일상과 몰/취향의 산물을 바쳐서 꾸며낸) 고향 없이도 지속될 수 있을 것이란 막연한 예감에서 비롯한다. 무시간성을 지침으로 삼는 것.
여기로 다시 거슬러 내려오는 것. 아니, 그냥 가만히 머무는 것만으로 예감은 실현된다. 그게 바로 영원주의의 패착인데, 왜냐하면 장소가 아닌 어딘가, 즉 여기에서 시간은 말 그대로 영원하고,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저 혼자 숨을 죽이면서 일상을 소비할 뿐이기 때문이다.
25.
실현 가능성과 무관하게, 여기서 벗어나고 싶은가? 안타깝지만, 여기 아닌 곳을 상상할 수 없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나는 여기에 머물고 싶다. 혹은 그렇게 하기를, “없는 몸”을 갖추고 있음에도 스스로 욕망하는 바이다. 청년 세대가 공유하고 있는 ‘새로운’ 생활 양식에 대한 가능성의 부재를 말하기는 쉽다. 동시에 새롭지 않기 위해, 각자에게 치미는 일상적인 무기력을 정동으로 삼아, 무슨 대단한 변화를 그르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다. 나는 자본주의와 같은 체제에 종속돼 있지만, 그 사실을 정동 차원에서 받아들일 수도, 일상 속에서 해소할 수도 없다. 청년이라는 범주는, 신생공간을 설명하기 위한 미사여구로 소진된 경우와 마찬가지로, 문제될 것 없는 미술, 아니 일상의 영속성을 보증하는 데 그친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물론 시간이 흐른다는 전제하에, 늙고 추레해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욕망의 경제”는, 체제 전복을 모색하는 무슨 아나키스트 혁명가, 아니 청년의 화신이 되기를 욕망하지 않은 채, 갈수록 스스로를 재/구성하게끔 만든다. 그렇다. 나는 청년 이후에서야 퀴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무기력하고, 그로 인해 나날이 일상을 그르치고 있으며, 얼마 전에는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충동, 아니 욕망에 시달리다 오래전 그날과 마찬가지로 약물 자해를 했다. 이전과 다르게, 고작해야 며칠 치의 용량에 불과했지만. 약 기운에 적당히 취한 채로 내가 각종 SNS에서 무슨 사람들과 나눴던 메시지를 스크롤링, 그 와중에 새삼스럽게 깨달은 것은 나의 일상이 유사한 패턴으로 망가졌거나, 지금도 그러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6년, 나는 누군가에게 미술을 그만두고 싶다고, 정신과 의사도 당분간 미술과 좀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조언했다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2011년, 나는 누군가에게 영화를 하느니 차라리 뒈지고 싶다고 장문으로 호소하는 중이다. 미친 새끼들과, 혹은 그 사람들 때문에 현장에서 갈리면서 소외된 것이다. 그 외에도 나를 사지로 내몬 것은, 매체와 장르를 불문한 ‘현장’이다. 거기서 부적응하다 여기로 거슬러 내려오는 과정에서 느낀 낙차 때문에, 절망적이고 무기력하다.
도대체 현장이 나에게 무슨 일을 저질렀는가? 구체적으로? 언제나 그렇듯이, 일일이 기억하는 건 불가능하다. 2011년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는 절망에 사로잡힐 때마다 술이나 약물에 절어있기를 선택했고, 그 이유 때문인지 뭔지 기억은 대체로 점액질이다. 중요한 건 현장이야말로, 무슨 대단한 체제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하여튼 내가 실패를 재/생산하게끔 만드는 거의 절대적인 조건이라는 사실이다. 현장과 (마크 피셔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체현된 현장으로 소묘했던) 비인간적인, 아니 계급 불문한 개개인의 자기 결정권이 사라진 관료제는 동의어가 아니다. 후자가 관료라는 유령화된 비/존재를 폭로한다면, 전자에선 ‘그것’이 무마할 수 없는, 너무 과도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거나 못한 나를 유령화시킨 ‘그들’이 있다.
그들은 노동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실현하는 서로와 관계를 맺는다. 아시다시피, 나는 그런 관계를 “호모 소셜”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속에서 노동으로 숙련되지 않거나 못한 존재가 가부장적인 맥락에서 덜떨어진 타자로 취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물론 “노동”은 얼마든지 다른 단어나 개념으로 대체될 수 있다. 젠더의 가치를 실현하는 서로와 관계를 맺는다. 섹슈얼리티의 가치를 실현하는 서로와 관계를 맺는다. 기타 등등. 타자는 그들의 관계 속에서 저절로 태어났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타자이기 때문에, 타자의 방식대로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나는 실패가 나의 정체성을 ‘새롭게’ 상상하기 위한 무슨 극적인 계기라고, 회고의 시점으로 돌이켜 낙관하고 싶지 않다. 그들이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해야 죽기를 원하고, 그러기를 반복하는 것뿐이다. 죽는 데마저 실패했을 때, 나의 주변에서 유령처럼 어른거리던 인간 군상은, 다름 아닌 현장에서 살아남은 ‘그들’이다.
내가 퀴어가 되기를 바라는 이유는,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그들을 타자로 덜 떨어지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퀴어로서 가부장의 자리를 둘러싼 제로섬 게임에서 승리하고 싶다. 나는 가난하고, 정신병자고, 일상을 무기력하게 소비하지만, 그들과 다르게 성적으로 문란하고, 현장이 아닌 여기에서 죽음을 무릅쓴 채 절망을, 오로지 그것만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자기혐오로 말미암아 실제로 죽어갈 것이다. 나와 다르게 그들은 타자인 동시에 타자가 아니기를 바라면서, 끝내 여기로 거슬러 내리기 위한, 그러기를 반복하게끔 만드는 욕망이 무엇인지 모른다. “욕망의 경제”는 그 자체로 무슨 관계나 공동체를 초래하지 않는다. 어느새 저 혼자서 늙고 추레해진 나의 이름으로, 청년처럼 변함없는 그들을 모욕할 뿐이다.
26.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미래에서, 여기를 회고할 수는 없다.
27.
<우리의 공동체>를 서둘러 편집한 뒤, 그 결과물을 데모 버전이라고 치고, 전시가 개막하기도 전에 사운드 클라우드에 풀었다. 예상했던 대로 별다른 피드백은 없었다. 사실 나조차도 이게 뭔지, 이걸로 뭘 할 수 있을지 묘연하게 보이거나 들렸다. 동료로 꼽을 만한 몇몇 사람들과의 담화 속에서 오래된 동네로 되돌아가기 위한 여정 비슷한 건가? 무슨 관객이 있다는 전제하에, 그들과 더불어 ‘그곳’에 정착하기? “머무를 땅과 노래”는 나 혼자만의 비밀로 남았고, 이제 다시는 ‘그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내 기억만으로 각색한 고향은 실재하지 않으므로.
데모 버전을 랄프와 함께 마스터링, 전시와 함께 공개됐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잡지의 기자 분께서 남긴 코멘트를 돌이켜보면 다음과 같다. 작가들과 달리, 이론가가 만든 작업은 전시의 주제와 무슨 접점이 있는지 너무 불확실하다. 뭔가 토크 같은 행사를 통해서라도 부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안타깝게도 나는 이론가가 아니다. 이론에 관해서라면, 한치의 자기 혐오도 없이, 그냥 무지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론을 다방면으로 잡식하기엔, 내 머릿속에서 돌고 있는 CPU가 (2010년대에 보급된 것에 가까운) 구식이거나, 온갖 피드를 무작위하게 헤아리느라 그중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연산해낼 수 있는 기능을 잃어버렸다. 아니, 그냥 오래전부터 망가졌고, 내가 무슨 사이보그가 아닌 이상 이론 특정적으로 개조할 수는 없다.
전시 관련한 토크를 하자고 누구에게 제안할 수도 없다. 일단 전시가 진행 중인 무슨 미술관은 부산에 있다. 전시 설치하는 데 모든 예산을 소비한 나머지, 아무도 내가 부산으로 오고 가기를 원하지도, 그러기 위한 여비를 챙겨주지도 않을 것이다. 물론 나도 무일푼으로 토크하고 싶지는 않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선, 뭔가 경제적인 타산과 이해관계가 필요하다.
물론 여기로 거슬러 오르는 일도 마찬가지다. 데모 버전은 관객에게 그런 수고를 덜어주기 위한 일종의 무급 노동이기도 하다. 사운드 클라우드 조회수는 여전히 형편없지만, 그래도 몇 안 되는 누군가가 조회라도 했다는 사실에 안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사실 그건 구라에 가깝고, 나의 예상에서 벗어나 업계 차원에서 뭔가 분란이 일어났으면 좋았을 것이다. 고향 비슷한 걸 헤아리는 데는 실패했지만, 그 사실로 말미암아 우리가 여기에서 얼마나 정처 없는지, 혹은 지금의 미술계가 왜 이렇게까지 문제적으로 공허한지, 좀 더 떠들었다면 공동체에 대한 기미가 보였을지도. 공동체란 무엇인가? 그건 바로 공동체 가지고 뭐라도 해보려다가, 작업 내적으로 쪼그라든, 딱히 처절하지도 문제적이지도 않은 방식으로 모두에게서 잊힌 추문이다. 참고로 본 전시의 중요한 키워드는 “관종”이다. 나는 관심을 사거나 팔지 못했다.
공동체에 대한 나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누그러졌다. 아니, 내가 공동체를 빌미로 인터뷰이와의 담화 속에 무/의식적으로 파묻은 기억, ‘그것’이 며칠 주기로 꿈속에서 반복될 때마다, 여기서 도저히 더불어 살 수 없는, 혹은 이미 죽어버린 존재들을 다시 기억했다. 그들은 나처럼 늙지 않았다. 청년이나 그 이상으로 자라나지 못했다. 나조차도 (고향으로서) 실재하지 않는다고 믿지만, 동시에 나의 향수를 자극하는 유일한 동네, 녹음 파일에 따르자면 한없이 정적이고 평화로운 ‘그곳’에서 되살아날 뿐이다. 그렇다. ‘그곳’은 고향도, 아포칼립스에 휩쓸릴 최후의 전초기지도 아니다. 나는 네가 죽은 이유를 거기서 수소문하다, 불시에 사라질 뿐이다.
28.
너는 내가 사라진 뒤에도 거기에 머무른다. 타자의 형상으로서.
29.
바로 거기, 그 자리에서 우리가 만나기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순간이 스쳤는지 헤아릴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고, 네가 오기 전까지 쇼윈도 너머의 풍경에는 인적이 드물고, 그 위에 햇빛으로 물러진 잔상이 나의 얼굴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30.
퀴어로서 누군가, 이를테면 나에게 각별하게 남은 한 개인만을 대변하는 일은 정치적이지 않다. 그 사람을 퀴어적인 맥락으로 규정할 뿐만 아니라, 나와 매개될 필요가 없는 당사자의 목소리를 저버린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사적인 관계, 혹은 사적으로 나눈 담화에서 ‘정치’로 구실할 만한 대목만을 훔친다는 점에서. 불링을 당하면서 생각했다. 그들도 누군가를 대변하고 있는가? 내가 숙지하지 못한, 아니 그럴 필요가 없었던 몇 세대에 걸친 논의를 과감하게 리부트한 ‘페미니즘’은 여성 그 자체였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더 이상 교차 검증될 필요가 없고, 자기 결정권을 지녔으며, 그 사실로 말미암아 섹스를 포함한 모든 욕망을 다스릴 수 있다. 여성은 그녀로 현전하고, 그녀와 동일시할 수 없는 비/존재들은 우리 모두를 위협할 뿐이다. 불링을 당한 결과, 피드에 따르자면, 우리 부모님은 나를 낳아버린 원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나의 경우엔 그냥 “재기”하거나 아가리에 휴지심 처박고 뒈지거나, 하여튼 여기서 죽어야만 사라질 수 있는 호모 새끼로 박제됐다. 이게 전부인가? 나는 불링을 통해서 완전해진다.
정치적이지는 않지만, 내가 저버린 목소리가 누구 것인지 자문할수록 ‘그녀’라는 인칭 대명사가 성가시게 느껴진다. 여기서 죽기를 실패한 나머지 사라질 수 없다. 나 같은 호모 새끼는, 호모를 포함해 서로의 정체성을 동질적인 것으로 누리기 위한 소셜리티, 무슨 공동체로 말미암아 자유롭지 않다. 나는 고가도로 아래서 누군가에게 “동지”로 불렸고, 마르크스의 팬덤을 구성했으며, 그보다 오래전 수유동 벽지에 움튼 소굴, 아니 성폭력 현장의 공모자고, 미친 새끼들과 더불어 살았고, 그들이 아닌 너와 친구가 됐을 때, 우리 사이가 나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이라 믿었으며, 네가 나와 무관하게 그럭저럭 일상을 치르기를 바랐거나, 그럴 만한 겨를도 없었거나, 내가 비평한다는 사실에 휩싸인 나머지 주변에 무심했거나, 모든 관계를 박살냈거나, 갈수록 혼자가 됐지만 그 사실만큼은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고, 스스로 휩싸일 수가 없고, 더 이상 무슨 동지나 동료로 불리기를 마다하고, 여성, 아니 그녀를 혐오하고, 자신을 퀴어로 오해하고 있으며, 그 사이에 죽어버린 네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그래서 절망하고.
너도 그녀가 되기를 바랐을까? 아니, 누가 너를 대변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함께 살았던 고향은 없고, 우리가 함께 지샌 오후, 내가 기억하는 한 영원히, 무한하게 지속될 그 시간만이 우리, 아니 내가 기억 속의 너와 마주할 수 있는 전부이고, 우리는 나처럼 늙지 않았다. 거기서 벗어나 각자의 시간으로 늙거나 자라날 채비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네가 죽기 위해선 거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 한다. 아니, 네가 죽기 전까지 스스로 치렀던 일상,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우리는 끝내 작별한다. 유리 창문은 여기와 저기 사이의 경계인가?
31.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오로지 그 문장을 여기로 데려온다.
“멜로디의 전체성을 통찰하는 자, 가장 고독한 동시에 가장 공동체적일 것이다.”
32.
오늘도 헛구역질을 반복하고, 아무것도 게워낸 적 없지만 속이 쓰리고, 간만에 여기를 중심 삼아 협소한 너비로 그린 반경에서 벗어난 채, 익숙하지 않은 풍경과 마주치고, 잔상처럼 스치고,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무슨 카페의 창가 자리에 멍하니 앉아있고, 그 사람은 네가 아니고, 유리 창문으로 여과된 햇빛에는 아무런 온기가 없다. 지금의 오후는 한가롭다. 스피커에서 자동 재생되는 음악이 무슨 장르인지 모르지만, 짐작컨대 서울 태생은 아니겠지, 이런 멜로디에 부합하기 위해선 창문 너머로 해변이 쏟아져야 할 것이다. 국적이 불문한, 어디 빈티지 매장에서 수선한 달력 커버 같은 풍경 속으로 잠수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뒷모습에 홀리는 대신, 아니, 그들과 무관하게 에어팟을 꼽고, 여기가 연희동 어디쯤인지 가늠한다.
머지않아 누군가가 도착하면, 우리의 약속은 실현될 것이고,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독해할 수 없는 장르적인 변주에 따라, 아무런 음악도 노래도 재생될 필요가 없는, 사실상 먹통에 가까운 에어팟의 헐거운 틈새로 새로운 멜로디가 여기 내가 앉은 자리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아니, 여기서 나만이 ‘그것’을 듣고 있고, 해변의 뉘앙스는 갈수록 풍부해지고, 노이즈 캔슬링이 얼마나 같잖은 일인지 실감하면서, 내가 차단하고 싶은 모든 이미지와 소음을 돌이켜본다. 누군가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유리잔 속에 담긴 얼음은 실시간으로 녹아가고, 저기 건너편에 있는 세차장 바닥에서 질질 새는 구정물이 미지근한 커피처럼 느껴질 때쯤 자리를 박차는 건 누구인지, 그 사람은 나 대신 햇빛으로 온몸을 마사지하다, 방금 전까지 여기서 흥얼거리던 멜로디에 따라 발작하기를 마다할 것이다.
인파를 헤치는 게 번거롭다면, 언제까지나 제자리를 고수한 채, 창문에 비친 풍경, 아니 여기와 저기 사이의 경계를 헤아리면서 오후 내내 시간을 죽일 수도 있다. 다음 곡으로 오버랩되는 사이, 나는 정적을 눈치채지 못한다. 주변 소음으로 혼자서 벅차오르다, 여기가 나와 더불어 터질 것만 같은 감각에 휩싸이지만, 아케이드로 구조화된 지붕 아래서 인파, 아니 우리는 모든 참사를 방지하기 위해 어딘가로 스크롤링, 각자가 예상했던 목적지에 너무 빠르거나 늦게 도착한 나머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포토 부스에 틀어박힌 채, 몇 초 간격으로 터지는 플래시 소리에 맞춰 좀 우습거나 싱거운 포즈를 취하고, 그 사이 불어난 대기 줄을 돌아 나오면 탕후루 가게가 있고, 알바생은 전자 담배를 피우면서 느긋하게 설탕을 코팅하고, 이제 막 지나친 사람이 말하기를, 저 장면을 찍어서 인스타에 풀었어야 마땅하지만, 각자의 손에 들린 스티커 사진은 우리만의 굿즈로 남을 거야, 우리 중 누구도 성가신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으며, 다음에 도착할 장소를 헤아리는 사이, 이미 ‘그곳’에 도착했으니 딤섬 몇 인분과 하얼빈 맥주를 시켜서 먹고 마시다, 아니, 대만에선 망고 맥주를 판다니, 이슬 톡톡 같은 건지 뭔지 궁리하다 서로의 벌게진 얼굴 때문에 실실 쪼개고, 우리에겐 참사도 극적인 사건도 없다.
공정하게 꾸민 프리마켓에선 딱히 살 만한 집기가 없으니, 뭔가를 더 소비하는 대신 술이나 좀 더 마시는 게 어떤지, 이번엔 칵테일이다, 섹스 온 더 비치라고 소곤소곤 말하면서 저 혼자 웃는 사람이 있고, 막상 시키려니까 입에 붙지를 않아서, 바텐더가 추천한 오늘의 칵테일을 홀짝이다, 이게 무슨 맛인지, 가성비가 좀 떨어지네, 가게 앞에 재떨이가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담배를 나눠 피우고, 담배 연기 때문에 표정을 구긴 채 지나치는 사람들, 아니, 이럴 거면 왜 여기에 재떨이를? 우리가 알 바인지 모를 일이고, 우리는 취했나, 연희동 카페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별로 부대끼지 않았다는 사실에 자족하고, 여기는 홍대입구 스테이션, 지금 이대로 지하철 객차 안에 몸을 구길 수 있을지, 어김없이 시간은 흐르고, 오후라고 하기엔 어느새 퇴근길이야, 다음에는 영화를 보자고, 네가 좋아하는 영화, 블록버스터든 뭐든 말이지.
그 사람을 통해서 알게 될 출처 모를 사람들, 물론 내가 발단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아무래도 인프피에 가까우니까 여러모로 곤란하지 않을까, 아니, 근데 당신이 MBTI 검사를 했단 말이야? 무슨 미신에 불과하다고 쏘아붙이던 게 엊그제 같은데, 다 기만이었어? 더 이상 캐묻지 않은 채, 각자의 속도로 흐르는 시간이 있고, 시간을 비선형에 가깝게 조각내는 게 좀 더 진부한 미신이라고 자체적으로 결론 내리고, 어디서 에어팟을 흘렸지, 주머니와 가방을 주섬거리다, 우리가 마주한 스크린에 떠오른 유니버설 픽처스 앞에서 겸허해지고, 무슨 장면이 클리셰인지 아닌지 헤아릴 겨를도 없이 카라멜 팝콘은 동난 지 오래고, 오늘은 포토 부스에서 인증 샷을 남기지 않았고, 우리만의 굿즈는 하나로 족하지, 안 그런가, 동지? 동지라니, <레미제라블>에 완전히 심취하셨군, 아니, 나한테 기억에 남은 건 뮤지컬 넘버 밖에 없으니, 제발 내가 보낸 링크를 좀 보시라고, 이건 단순히 명장면으로 각색한 혁명군의 시위가 아니야, 역사 그 자체라니까. 당신이 초대한 자리에서 나는 숨죽인 채, 저 혼자 소맥을 기울일 뿐이고.
오늘의 숙취는 이전과는 좀 다른 느낌인데, 겨우 화장실로 기어들어가 속을 게워내고, 내가 말하기를, 어제 그 사람들은 좀 징그럽던데, 벤츠를 모는 게 꿈이라니, 우리 처지에 그런 일이 가당키나 한지 의심스럽고, 아니, 여기서 탈출하기 위해선 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수화기 너머로 중얼거리는 당신의 풀 죽은 목소리, 오늘도 출근하는지, 거기선 무슨 일을 하는지, 어제 누가 부른 노래에 따르자면, “친구여, 세월이 많이 변했구려.”에 가까운 일상이 반복되고, 우리는 가끔, 아니 생각보다 자주 절망적이고, 다시 연희동 투어를 떠나기엔 좀처럼 아귀가 들어맞지 않고, 각자 누구와 연애하는 사이 틈틈이 연락하지만, 역시 전화보다는 카톡이 효율적이지, 키득거리는 글자들은 액정 밖으로 들리지 않고, 네가 생일 선물로 보낸 스타벅스 기프티콘은 아직 선물함에 담겨있고, 유효기간 내에 쓸 거라고 이모티콘과 함께 다짐하지만, 동네 주변에 스벅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여기는 그냥 벤츠 바퀴에 갈린 처참한 얼굴 같아.
33.
아케이드 속을 떠돌다, 우리는 언젠가 마주쳤을 수도 있다. 인파 속으로 잦아든 사람들, 혹은 그들과의 관계가 너무 잡다한 나머지, 서로 눈치채지 못했을 뿐. 내가 너를 놓쳤던 것처럼, 너도 나의 손을 내내 붙잡지 않았고, 덕분에 우리 사이는 서로를 뭐라고 기억하거나, 그 기억 속에서 욕보일 만큼 징그럽게 자라날 기회를 놓쳤고, 그보다 오래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게 각자의 일상을 어떻게 절망이나 공포로 물들였는지 헤아린 적이 없다. 그렇다. 너는 더 이상 그 여자애가 아니고, 나는 앞으로 너를 위해 누구도, 아무것도 대변하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네가 타자의 형상으로 나에게 치민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사람, 아니 타자처럼 어른거리는 누군가를 나의 꿈이나 기억 속 풍경에 이대로, 불가해한 대상으로 방치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내가 사라진 뒤에도 거기에 머물렀던 누군가가 나를 여기로 데려오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 여기에서 자기와 더불어 존재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북적이기를 바라듯이, 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일 수 있는지 자문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타자와 “비체적인 존재”를 반드시 동일시할 필요는 없다. 동시에 젠더를 불문한 누군가가 자기를 비체로서 드러내지 않는다면, 나는 관객, 아니 누군가에 대한 타자로서 그 사람의 내부를 목격할 수 없다. 역겹고 징그러운 내부, ‘그것’은 가부장적 제도가 다스린 여성의 실체라기보다, 페미니즘의 역사 이래로 여성으로 수렴되는 소수자, 사회적으로 소외됐기 때문에 존재 자체를 잃어버리거나 스스로 망각한 비/존재들이 외부로 내지른 비명의 결과물이다. ‘그것’은 허공에 메아리치는 대신, 발화자가 여기서 실재한다는 사실을, 무슨 언어로 가지런히 독해할 수 없는 자기 욕망으로 주장하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입증해 보인다. 나의 내부가 ‘그것’으로 가득 차 울렁거리고 있으며, 나는 ‘그것’을 몇 번이고 게워내지만 도무지 개운치 않고, 그런 식으로 속이 뒤틀린 몸을 자각한 채, 그 몸으로 서로와 부대끼고, 질척거리는 사이, 내부와 외부, 혹은 여기와 저기를 갈라친 이분법은 사용 가치를 잃는다. 아니, 관절처럼 으스러진다.
서로의 몸을 폭로하는 건, 가부장이 추스릴 수 없는 여성의 몸이자, 누구도, 어쩌면 당사자마저도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형식을 초래한다. 정치적 레즈비어니즘, 즉 여성들이 정서적인 유대만으로 결속될 수 있다는 래디컬한 슬로건은, 그런 의미에서 합의되지 않은 관계, 그 속에서 섹스와 유/무관하게 들끓는 욕망을 저버린 채, 갈수록 무해하고 안전해진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이 아닌 타자와 결속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여성이 누구인지, 여성 당사자와 마찬가지로 온전히 헤아릴 수 없지만, 그와 별개로 자기 욕망이 지속되는 한, 발작으로 뒤틀린 몸처럼 혐오스러운 자신과 그런 ‘나’와 매개된 사람들이 헤쳐모일 수밖에 없는 여기를 욕망한다. 그렇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무슨 공동체의 일원이 아니다. 각자의 몸을 담보 삼아, 심지어 ‘그것’을 사고 팔면서까지 함께 머물기 위해, 아니 그냥 혼자 남겨지지 않으려고 여기서 처절하게 몸부림칠 뿐이다. 나는 타자이고, 타자는 나로 현전한다. 타자들은 서로를 동일시하다 실패하고, 밤낮없이 섹스하고, 원망에 가깝게 사랑한다.
네가 누구인지 끝내 알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끊임없이 너의 몸속으로 파고든다. 그게 “없는 몸”일지라도, 우리가 타자로서 부서질 수 있다면, 여기에 남은 건 픽셀이 아니라 욕망의 잔여일 것이다. 동지, 나는 그 사실만을 믿는다네. 우리의 약속은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네. 우리가 흥얼거리는 인터내셔널이 정말 해방을 기약한다면, 나는 그 미래에 다다를 때까지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 검정치마의 가사와 달리, 여기가 “얼어붙은 아스팔트”가 아닐지라도.
34.
매 순간을 기록하는 일, 혹은 그 과정에서 드러난 온갖 부조리한 변수를 사후적으로 재/구성하는 “자기 이론”은, 당연하게도 나와 연루된 과거를 돌이킬 수 없다. 과거가 그 자체로 객관적이라는, 기록의 주체 내지는 자기 확신으로 가득 찬 사이비 역사학의 오해와 별개로, 아니 그런 식의 거대 서사를 모욕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남긴 기록 안팎에서 ‘나’라는 일인칭 화자는 언제까지나 타자로서 갈피를 잃는다. 기록은, 무엇보다 ‘그것’이 글쓰기의 형식으로 구현된다면, 글을 쓰기 위해 다다른 현재 시제로 말미암아 (과거에 대한) 기록으로서 실패한다. 동시에 실패한 기록은 과거와 유사한 맥락에서, 돌이키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그 사실을 어렴풋이 알면서도 기록을 무릅쓰는 일은, 최소한 나의 경우엔 ‘나’를 타자로 오해하고 싶기 때문이다. 혹은 아케이드로 구조화된 현재, 아니 여기를 복잡하게 어지른 채, 계속 갈피를 잃고 싶기 때문이다. 지붕과 대들보가 휘청거리다 나에게로 모든 잔해가 쏟아질 것처럼, 아직 기록으로 남기지 않은 여기가 왠지 모르게 불길하게 느껴질 때마다, 여기는 나와 더불어 기록될 운명이다. 그런 식으로 무수한 ‘나’들은, 우리라는 범주를 대신해 여기서 머물 수 있다.
기록은 기억을 위한 매체다. 달리 말하자면, 기억은 기록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읽거나 보거나, 무엇보다 감각할 수 있는 대상으로 구현된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는 그 대상을 무관심하게 저버리거나, 스크롤 너머로 치우고 말겠지만, ‘그것’은 설사 모두가 망각하더라도, 아니 망각함으로써 기억의 가치를 되묻는다. 소셜 미디어 차원에서 기억은 폭락한 지 오래다. 아시다시피, 우리는 일상적으로 스크롤링을 반복하면서 매 순간을 잊어버리고, 다시 잊어버리기 위해 스크롤을 능숙하게 조절한다. 페북이 알려주는 과거의 오늘, 무슨 장소에 태그된 ‘우리’의 존재를 우연찮게 발견하는 순간, 잠깐이나마 기억으로 숨을 고르긴 하지만, 그건 애초에 나의 기억이 아니라, 스크린 타임을 늘이기 위해 재/생산되는 데이터일 뿐이다. 기록이 정말 기억을 위한 매체라면, 우리, 아니 사용자는 ‘그것’을 무슨 클라우드에 외주하고, 데이터가 초래한 자동화된 기억이 회고의 방식을 대체하며, 결과적으로 무수한 ‘나’들이 머물기 위한 여기, 기록하기 위해, 아니 그러기를 추동하는 장소성의 감각은 사용자 편의적이지 않기 때문에, 글쓰기와 마찬가지로 시대착오의 산물로 스크롤링, 이번의 실패는 여러모로 치명적이다.
어떻게 기억을 여기에서 복원할 수 있을까? 히토 슈타이얼 같은 작가라면, 다크 웹에서 유통되는 가난하거나 저질스런 이미지와의 무작위한 관계 속에서 기록 내지는 기억이라는 물신을 산산이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사용자이자 디지털 노마드로서 재/생산한 ‘이미지’를 무단으로 사고 파는 익명성의 관계를 통해 공적인 기록을 사유화하면서, 우리를 위한 새로운 기록 시스템을 창안하는 것이다. 웹3.0의 시대와 더불어, 포스트 인터넷에 관한 온갖 사변들이 개막하는 순간이다. 그 이후로 지금 시점에서 10년 남짓 시간이 흘렀고, 내가 사용자로서 경험한 바로는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혹은 원하는 만큼 구현된 치외 법권은, 나와 같은 (비유적인 의미에서의) 난민이 자유롭게 드나들기엔, 생각보다 불법적으로 까다롭다는 사실이다. 사용자로서 유능할수록, 이를테면 개인 차원에서 장르 불문한 더 많은 정보들을 디깅하고, 무슨 리스트를 작성하고, 그 결과물을 유포할 수 있는 자기만의 경로를 개척할수록, 그 사람이 익명이든 아니든 간에 치외 법권에서 나날이 승리한다. 달리 말해, 이미지 그 자체는 더 이상 가난하지도 저질스럽지도 않은 전리품이 되고 있으며, 사용자는 ‘그것’을 차지하기 위해 바이럴에 가까운 음모론을 퍼뜨리고, 비/자발적으로 속아 넘어가면서 말 그대로 저질이 된다. 새로운 기록 시스템은 그 무엇보다 “욕망의 경제”에 충실하며, 계급적이고, 빅테크 산업의 원동력이다.
그 과정은 나와 연루된 과거와 마찬가지로 돌이킬 수 없다. “자기 이론”의 패착은 매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 이미 데이터 차원에서 실현됐고, 그로 인해 내가 남긴 기록이 클라우드 안팎에서 여타 데이터들과 함께 주관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정황이나 가십으로 버무려진 순간, 어떻게 ‘나’를 입증하거나 그에 실패함으로써 타자가 되는지, 별로 관심이 없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그렇다. 글이라는 형식은 더 이상 “자기 이론”을 그 자체로 수행하기 위한 유일한 인터페이스가 아니다. 아니, 나에겐 ‘그것’을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 부합하게끔 인터페이스 차원에서 재/구성하려는 의지 자체가 결여돼 있고, 글은 갈수록 형식적으로 무뎌진다. 기록을 포함해, 역사 이래로 반복된 매체 특정적인 실험은, 모더니즘 예술의 당사자들이 하나둘씩 죽어 나가는 현실과 더불어 실시간으로 수명이 깎이고 있다. 나는 2010년대에 종속된 사용자라는 정체성을 저버림으로써, 그 이후에 사용자를 사로잡은, ‘유닛’으로 중립 기어를 걸기엔 너무 다방면에서, 빠른 속도로 소진되고 있는 욕망에 대한 타자로서 여기로 되돌아왔다.
35.
나는 무수한 ‘나’들과 함께, 어느새 기록으로 남은 여기, 시간이 멈춘 것 같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결말을 유보함으로써, 갈수록 내적으로 복잡해지는 기억, 아니 서사 속에 존재한다. 나의 인터페이스 연대기가 완전히 막을 내렸다는 사실을 직감한 채, 사용자 이후after에 도래할 누군가가 여기를 망각하도록 내버려 둔다. 잊혀진 존재로서, 다시 주변을 어지르기 시작한다.
36.
동시에 누군가와 달리, 멜로디의 전체성에 통달하지 못한 채, 가장 공동체적이지도, 가장 고독하지도 않다. 아니, 그냥 고독하기만 할 뿐이다. 점으로 귀결되지 않는 내가 머무는 곳, 너무나도 협소한 여기 주변은 대체로 인적이 드물고, 주변의 스피커는 방전됐고, 쇼윈도, 아니 환기를 위해 열어둔 창문 밖에서 들려오는 건 멜로디가 아닌 도심으로 향하기 위해 무리 지은 차들의 경적 소리, 재개발 공사를 위해 무디게 고른 땅의 정적,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그 사실을 원망하며 잠들 때마다, 다시 되돌아오는 고향, 아니 나로 수렴되는 교실의 풍경, 자기 부정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화사한 ‘그들’의 기척, 갑작스럽게 나를 노려보는 의심스런 눈빛, 걸걸한 목소리, 꿈속에서 우리는 결국 망가지지만, 그건 꿈으로 그친다. 현실로 추방되면, 언제까지나 나 혼자만이 망각되고 있으므로 고독하고, 그로 인해 사무친다. 지금이 서사의 결말이라면, 나는 ‘그것’을 유보하거나 미룰 수 있을까? 그럴 이유가 무엇인가? 나의 존재가, 온몸으로 서사 속에 치밀지 못할 것이란 예감으로 소스라친 나날들, 무한에 가까운 스크롤링.
언젠가 술에 취한 채 말했다. 아니, 나 혼자 자문하기를, 내가 고대하는 건 현장일지도 모른다고. ‘그곳’은 우리가 숙지했던 미술과 다르게, 지금도 절박하게 아우성치고 있다고. 반드시 서울로 구현되지 않는, 내가 가본 적 없는 사회의 벽지로 떠밀리는 사람들. 다음 날, 나는 인권 단체나 무슨 활동 조합, 소수자를 위한 구호를 수소문하지 않은 채, 숙취로 눅눅해진 몸을 여기, 먼지가 내려앉은 침대맡에 방치했을 뿐이다. 손목이 시큰하다. 너무 많은 글과 말들을 떠들었다. 집은 여전히 쓰레기장에 가깝고,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되는지? 오늘도 작업실, 아니면 내가 서사와 동일시하는 현장으로? 짐작컨대, 내가 고대하는 현장은 서사 차원에서 유려하게 마감될 수 없다.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대로 체화한 절망과 환희, 그 외에 자기를 벅차오르게 만드는 정동의 형식은, 무슨 서사에 부합하려는 메소드가 아니다. 아니, 나는 그게 뭔지 모른다. 나는 이제 막 미술, 아니 ‘그것’을 부연하기 위한 비평적 언어를 의심에 부쳤을 뿐이다. 비평가로서 자살한 적도, 무슨 대의만으로 전시장을 불지른 적도 없다.
나는 절망적이지 않다. 이전보다 절망의 해상도가 높아졌을지도 모르지만, 다시 창문을 닫으면, 여기서 숨죽인 채, 주변, 아니 현장에서 누군가가 갈리는 비명은 자연스레 멀어진다. 헛구역질은, 무슨 실존적인 공허를 게워내는 몸부림이 아니라, 그냥 식도염의 증상일 뿐이고, 나의 몸이 불시에 없어진 것 같은 무/감각은 (인데놀을 포함한) 정신과 약의 부작용, 내 머릿속에 든 것은 나를 죽음으로 위협하지 않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물혹, 내가 시달리던, 아니,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자기 혐오를 부르는 온갖 징후들은 생각보다 자주 사사롭다. 그렇다. 나는 절망적이지 않다. 내가 혼자 남겨졌다는 사실로 인해, 세상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다. 혹은 세상이 멸망하고 있다는 서사의 개요는, 나와 무관하게 갈수록 구체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멜로디의 전체성을 통찰하는 자, 가장 고독한 동시에 가장 공동체적일 것이다.” 멜로디를 흥얼거리는 사이, 우리의 약속에 따라 누군가가 도착했고, 우리는 여기서 나갈 채비를 갖춘다. 나와 동행하는 누군가는 여전히 네가 아니고, 쇼윈도 바깥을 비추는 햇빛은 적당히 따사롭고, 무작정 거리를 헤매는 대신, 우리가 향하는 곳은 무슨 전시장, 거기서 반복 재생되는 영상들. 블랙박스는 아니지만, 스크린의 조도에 걸맞게 어두침침한 공간에서 주섬거리는 우리의 기척.
37.
미술이 여전히 모순적인지, 그러기를 원하는지 나는 모른다. 이제 신생공간은 여기에 없고, 아무도 그 사실을 돌이키지 않으며, 나도 ‘그들’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지만, 중요한 것은 과거로부터 무슨 슬로건을 끄집어내서 반복하는 일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혹은 애초에 ‘신생’은 그런 게 아니었다고 뒤늦게 의미를 구하는 일이 아니다. 미술, 아니 ‘그것’에 사로잡힌 비/당사자들이 놓치고 있는 건, 여기에 없는 것의 부재다. 스크롤의 감각은 장식처럼, 장식은 스크롤의 감각처럼 흐르고, 흘러내리고, 전시장 바닥에는 장식이기를 포기한, 그럴 수밖에 없는 노동의 잔여,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 자기 욕망에 미치지 못한, 아니 누군가가, 무슨 여론이 욕망하기 위해 버려두고, 금세 잊어버린 유행에 닳은 소비재, ‘그것’을 꾸며내다 실패한 안드로이드 하청 업자들, 죽은 사람들, ‘그들’의 온기가 쌓이고 있지만, 그래서 여기가 장식으로 무성하지만, 전시가 막을 내리면, 전시의 이름으로 그 모든 걸 쓸어버린다. 그렇다. 부재는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우리보다 잡다한 “타자”로서 여기에 있는 것을 일일이 추궁한다.
여기에 있는 것이 미술이라면, 미술은 자신이 초래한 모순이 무엇인지 모른다. 당사자성의 원칙에 따라, 자기만을 대변하기 위해 공적인 기금을 소진하고, 그 사실로 말미암아 기금 자체의 부조리한 속성, 사회로부터 환원된 자본이 미술과 같은 쓸모없는 대상을 재/생산하는 원동력이 돼버린 상황을 사회적인 부조리 그 자체로 폭로할 뿐이다. 그렇다. 미술은 이제 속물적이다. 자신의 쓸모없음을 자체적으로 해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아니, 쓸모를 잊어버린 장식으로 자신에게 내재된 모순을 감추기 위해, 사회를 착취한다는 점에서. 우리들 대다수는 중산층이 아니지만,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선 중산층의 요건을 갖춰야 마땅하고, 더 나아가 계급을 초월하는 정서적 미감을 지들끼리 공유하면서 축배를 들고 있다. 중산층마저, 자기가 나고 자란 레디메이드 환경에 길들여진 채 누리지 못할 미적 형식을, 우리가 미술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독차지하면서. ‘그들’은 존나 덜 떨어진 부르주아고, 우리는 ‘그들’보다 프티하다.
우리가 존나 무슨 소셜리티의 근원이 된 것 같아. 저기, 쓰레기처럼 매립된 서울, 아니 미적으로 실패한 세상에 우리는 없는 것 같아. 그렇다. 저기에 없는 것은 우리고, 우리가 아닌 사람들은 끝내 우리의 부재를 놓칠 것이다. 우리로 말미암아, 미술은 세상과 무관하기 때문에 쓸려나가고, 여기에 쓰레기로 매립될 것이다. 맞아, 미술이 모순적인 이유는, 아름답기 때문이지. 부재로 현전하는 타자, 각자의 쓸모를 강박적으로 의식하는, 그럴수록 저기로 잡다하게 쓸려나간 ‘그들’이 아름다운 미술, 즉 여기에 있는 것에 완전히 무관심해질 때, 지금까지 유지했던 미술과 사회의 공모 관계는 너저분하게 끝날 것이다. 실제로 미술에 공적으로 투자하기 위한 기금은, 설사 그 이유가 우파 가속주의에 심취한 정부의 음모라고 한들, 매년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우리는 미술의 존재 가치를 관료제에 부합하는 합리적인 언어로 설득하는 데 실패한 나머지, 여기서 마침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 안타깝지만, 우리는 관료제 바깥에서, 미술의 이름으로 누군가에게 호소할 수도 없다. 미술이 쓸모없는 것을 전부 추방했으므로.
38.
우리의 미술은 끝났다.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타자에 의해 기록된 적이 없다.
39.
시간은 흐른다. 아니, 여기에서 스크롤링, 자꾸만 어딘가로 뒤처진다. 이 순간으로 서사를 매듭짓는 일은, 나의 의지대로 실현되지 않는다. 내가 망각되고 있다면, 무심결에 그러기를 원하는 누군가가 있을 테고, 그 사람은 자기 일상을 치르면서 자기만의 기억을 쌓거나 무너뜨리기를 반복, 그 결과물로 남겨진 잔해들을 일일이 호명하기엔 기억은 너무 두서없다. 아니, 기록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얼마나 절망으로 치우쳤는지와 상관없이 금세 점액질이 된다. 흐물거린다. 나는 때로 그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 망각은 서사의 결말이 아니라, 서사가 파놓은 함정에 가깝고, 우리가 현실에서 좌초될 때마다, 각자가 떨어지거나 도착한 자리에서 어김없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누군가는 그 순간이 지속됨으로써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온전히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치이면서 비/물리적으로 박살난다. 누구에게나 스스로 함정을 덮을 수 있는 권한이 있다. 어떻게든, 처절하게 골라낸 지반 위에서 숨을 고른다.
망각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망각이 드리운 곳에서 살고 있는 누군가가 존재한다. 그 사람은 위협적이고, 자신이 저지른 상처들에 무관심하며, 때로는 이웃처럼 친절하다. 아니, 뭐라고 구구절절 부연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지 않고, 그래서 ‘나’의 관점에서 불가해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 사람에게 제발 여기서 좀 꺼지라고, 내 머릿속에 든 물혹과 함께 너의 존재 자체를 도려내고 싶다고 호소하거나, 그 사람의 위협적인 제스처와 싸우듯 어설프게 고함치지 않는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정말 여기에 남겨진 채, 망각을 좀먹으면서 나고 자라, 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 무한한 시간 동안 나의 머릿속을, ‘그곳’에 욱여넣은 온갖 단상들과 공허, 끝내 생존하기 위한 강박을 난도질했는지, 오래전에 잊어버렸거나 망각으로, 아니, 망각 속에서 버무렸으므로. 나와 무관하게, 그 사람은 여기서 새끼를 치고, 자기 새끼들과 놀고 먹으면서, 자기만의 서사를 차지한 채, 가부장처럼 거들먹댄다. 그 사람은 어쩌면 당신일 수도.
아니, 나일 수도, 내가 끝내 발설하지 못한 너의 이름일 수도. 무수한 ‘나’들이, 우리가 각자의 방식으로 고르거나 파헤친 지반 아래서, 점액질이 흐르고, 흘러내리고, 수치와 영광이 교차하면서 끊임없이 굴을 파는 ‘그곳’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것 같다. ‘그들’이 나와 더불어 살아있거나, 그러기를 호소하는 것 같다. 나 또한 ‘그들’의 일원으로서, 내가 알거나 모르는 누군가, 즉 타자의 몸속으로 파고든 채, 밤낮없이, 아니 우리 둘이서 누렸던 오후 내내 성난 햇빛처럼 휘몰아치고 있는 것 같다. 나의 언어로 계속 말하거나 쓸 수 있을까? 여기를 계속 기록할 수 있을까? 아니, 기억의 지리학은 불가능하다. 이번에는 단언할 수 있다. 기억은 한 개인으로 수렴되는, 그 사람이 자신을 규정하기 위해 추스른 과거의 허물이 아니다. 우리는 기억을 매개로 공모한다. 기억으로 말미암아 서로를 착취하고, 서로의 언어를 훔치고, 도려내고, 그 사실을 숨기거나 폭로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렇다. 나는 우리를 구성하는 모두의 카피캣이다.
40.
카피캣으로서, 내가 말하고 쓰는 언어를 모두와 함께 돌이킨다. 주체의 형상이 멀어진다. 아니, ‘그것’은 픽셀과 함께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헛구역질의 반복. 나는 절망적이지 않다. 언젠가 네가 말했듯이, 우리 혀가 더 많이 변했지. 그 문장을 여기로 데려오는 순간, 그건 더 이상 너의 말이 아니지. 오후가 저물기 전까지, 여기서 떠나지 않는다. 창문 안팎에서 메아리치는 소음들. 아직 무너지지 않은 인파 속에서, 포옹을 마다한 채 서로를 스치는 사람들.
“우리 혀가 더 많이 변했지.”
나는 뭐라고 대꾸하기 위해 말을 고른다. 버벅거린다.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우리가 여기서 만나기를 약속한 순간부터, 기억은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 시간이 흐른다. 무슨 녹음기를 켜두진 않았지만, 앞으로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게 될 때마다 나의 머릿속이 분주하다.
41.
공동체의 상실, 그것은 우리에게 각기 다른 경로로 치미는 사적인 경험이다.